사라진 고향 ...그리고 초가집
언젠가 청도 서원장에 있는 조선족소학교에 학생들을 상대로 백일장을 진행하기 위해 찾아 갔을 때 교장선생님은 한가지 요구를 해왔다. 제목을 정할 때 요즘 애들의 상황을 고려하고 선택해 달라는 것이였다.
이를테면 요즘 학생들은 고향이라는 개념 자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고향”이란 제목이 나와서 당황 했다고 한다. 어떤 학생들은 고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설령 안다고 해도 고향에 대해 거의 무감각하고 심지어 고향이 어딘지 스스로도 헤갈려 한다는 것이였다.
교장선생님의 말을 듣고 동감이 갔지만 마음은 무거워 났다.
고향은 태어나 자라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곳이다. 고향이란 이름은 엄마의 품속처럼 포근하고 무한한 행복속에 도취되게 한다. 하여 그 누구나 추억속의 고향을 마음속 깊이 뜨겁게 간직하고 산다.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에 와닿고 그토록 절절하게 그리운 곳이 고향이다. 고향은 곧 집이고 마음의 언덕이다.
나의 고향은 어쩌다 산으로 놀러 가려 해도 기차를 타고 몇 정거장은가야 하는 일망무제한 허허벌판이다. 봄이면 부지런한 농군들의 손끝에서 푸른 주단을 펼쳐 놓은듯 무연히 펼쳐진 논배미, 가을이면 건들건들불어오는 시원한 들바람에 풍년을 알리듯 황금이삭이 넘실넘실 춤을 춰 농사군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집도 수전농사를 짓는 농사군이었다.
봄이면 또래애들과 같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달래 캐러 다니고여름이면 개울물 찾아 목욕도 하고 조개잡이도 한다. 가을이면 메뚜기잡이를 나서고 겨울에 함박눈이 오면 손을 떵떵 얼궈가면서도 신나게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고향은 그야말로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고 그 추억을 들먹이노라면 잠시나마 여유있는 마음의 산책이 되어 행복속에 도취되기도 한다. 무연한 벌판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흙냄새가 지금도 코끝에 얼른거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출국바람이 불고 도시로 진출하기 시작하여서부터 한집두집 누가 쫓기라도 하듯이 바깥세상에 매료되어 허겁지겁 고향을 떠났다. 목숨줄이었던 땅을 버리고 무작정 시대의 조류에 발 맞추느라 어디론가 떠나갔다.
촌가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농촌마을에서 한마음이 되어 서로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즐겁게 지내던 조선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마을은 점차 황페해지고 그토록 아름다운 추억만 심어주던 고향마을에 조선족들은 거의 자취를 감췃다. 그 바람에 한족들은 살고 났다고 농사를 크게 지어 도시 못지 않게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외국으로 나간 조선족들도 궂은 일마른 일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 대도시에 번듯하게 아빠트를 사고 번지르르하게 살게 되었다. 어쩌면 모진 가난에서 벗어나 신세를 단단히 고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 조선족들은 용케 해외로 나가 목돈을 쥐고 국내로 돌아온 케이스이다. 귀국해 도시에 터전을 잡았지만 알맞은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매일 마작놀이 술놀이로 돈을 펑펑 쓰며 허송세월 하다가 주머니가 밑굽이 나면 또다시 외국으로 급급히 떠난다.
초조하고 번잡한 그런 삶에 지친 사람들은 자기도 믿지 않는 넋두리를자주 한다. 애들만 도시에서 출세 시키면 고향에 돌아가 안 일한 생활을 하겠다고 한다. 그들의 눈빛에선 항상 불안감이 맴돌고 아픈 내음이 짙게 풍겨온다.
지금은 깨끗한 환경에서 아빠트생활을 하고 있지만 항상 정신줄을 놓지 못하고 근심과 걱정에 시달린다. 오히려 신문지로 벽과 천정을 도배한 토굴같은 초가집에서 오구작작 모여앉아 신문에 실린 제목들을 찾는 재미로 웃고 떠들던 때가 더욱 즐겁고 행복했던 거 같다.
이보다 더 골치 아픈것은 우리의 후대들이다. 지금의 신세대들은 고향이란 개념을 모른다. 아니, 고향 자체가 없다. 도시에서 태어 났지만 호적이 없어 태어난 곳이 고향으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부모의 고향이자 호적이 종이장으로 남은 그곳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전혀 생소한 고장이다. 그곳 역시 애들한테는 고향일수가 없다.
고향의 부재!
고향을 잃어버린 억울한 세대가 되어버린 우리의 후대들은 지금 심각한 위기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다.
아빠트에서 살다보니 이웃도 제대로 모르고 너나없이 독자여서 친구가 소중한 것도 모른다. 발에 진흙을 묻혀보지 않아 땅의 위대함을 알지 못하고 마음껏 뛰놀고 활개치며 다닐 수 있는 자연환경과 점점 멀어져지면서 세상이 넓은 것도 도무지 모른다.
고향을 상실한 아이들은 늘어나는 재부와 더불어 현대적이고 선진적인 놀이기구들을 소유 했을 지는 몰라도 천진함과 낭만을 잃은 건 분명하다. 해종일 집구석에 들어 박혀 홀로 티비와 게임과 상종한다.
그리고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팽개쳐진 경우가 허다하다. 부모사랑조차 잃고 생기를 잃어 간다. 출국열이 휩쓰는 통에이혼률도 높아져 이집저집 떠돌며 생활하는 애들도 적지 않다. 한곳에 정을 붙일라치면 부모의 연유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런 애들한테 고향에 대한 절절한 감정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 고향이 어딘가고 물으면 대답이나 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자라나서 민족의 주체가 되는 그날이 온다면 우리는 도대체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 할 수 있을가? 한 그룹을 묶어내는 신앙을 산출 할것인가 아니면 집단을 부흥시키는 동력을 만들어 낼것인가?
고향을 그리는 글들을 보면 마음이 짜릿하고 심금을 울려준다. 하지만 장래의 작가들은 고향이라는 글조차 쓸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지옥보다 더 무서운게 아닐까. 고향을 쓴 글조차 자취를 감춘다면 인간은 구경 어디에 마음을 기대여야 하는가.
다행히 주변에 훑어 보면 늙으면 번거롭고 소란한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 가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다소 위안이 된다. 도회지의 치렬한 경쟁에서 도태 되었던 아니면 금의 환향이던 관계 없다.
아직 우리에겐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고향에 다 큰 자식들이라도 찾아 오면 거기가 또한 그들의 고향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적어도 다음다음 세대는 고향의 정취를 얼마간 이라도 느끼면서 자랄 것이다. 글: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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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리는 석마돌에 빙글빙글
두만강 뱃머리가 흘러갔다
수림의 청송백송 웨치며 쓰러졌다
대들보에 청제비 둥지
이민사의 눈물자국 열려있다
나귀가 도는 땡볕에
깨지는 옥수수 가난한 밥상우에
할머니 눈물 보인다
마루에 할아버지 대통 두드린다
사립문 한지 추워지를 막고
토벽이 세월 다스리고
석마돌 빙빙 굶주린 역사 뭉개고
방아집 새각시 푸른 눈물
석마돌 초가집에 곱게 실려있다
빙빙 돌아가는 석마돌
삭아가는 초가집 누런 이영
한민족 눈물의 풍경
방문객 깊은 향수로 하늘은 푸르다
[타향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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