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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리턴즈

2016-12-16 대성당 延边in信息港

1화. 무신불사(武神不死). 무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우― 우―. 한밤중 울려 퍼지는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팽성을 포위한 초나라 출신 병사들은 그들의 조국에서 자주 부르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초의 어머니는 아들을 부르고, 그 아들은 어미를 부른다네.”


고향을 노래하는 그들의 음율은 전장의 피로 차갑게 식어 버린 심장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다. 그 안에는 애절함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피로써 피를 씻고 칼로써 나라를 일으키는 시대. 천하인들은 이러한 시대를 일컬어 난세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난세를 종결시키기 위해 꺾어야 할 최후의 적, 일인군단(一人軍團)이라 불리는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 그를 죽이기 위해 모인 연합군은 수도 팽성을 포위하고는, 포로로 사로잡은 초나라 병사들에게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병력들에게 둘러싸인, 살아 있는 무신(武神) 항우. 하릴없이 잔에 술을 채우던 그는,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노래는…….”


그의 말에 장수 정장(亭長)이 침통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초나라의…… 노래입니다.”

“정녕…….”


항우는 감은 눈을 파르르 떨며 술잔을 들이켰다.


‘내가 머무는 전각에까지 노랫소리가 들려올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초나라인들이 저들 연합군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인가. 이는 한나라 군대가 초나라 땅 대부분을 점령했다는 뜻이로군…….’


항우는 비워진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워 넣었다. 술잔의 겉표면에 자신의 긴 머리칼과 호랑이를 닮은 듯한 얼굴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허탈한 침음을 흘렸다.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이지……?”


자신의 우유부단함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의 자만함? 오만함? 천하를 호령했던 그가 왜 이리도 추락하게 되었을까.


“…….”


항우는 고개를 돌려 얼마 남지 않은 신료들과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많았던 인재들이 자신의 곁을 떠났다. 그들은 따르고자 했으나, 정작 항우 자신은 그들을 믿지 않았기에…….


“내 꼴이 우습게 되었구나.”


항우가 걸어온 길에 대한 후회감과 원망으로 속을 끓이는 사이, 옆에 있던 그의 부인 우미인이 빈 술잔을 채웠다.


“주군…….”

“우희…….”


우미인 혹은 우희라 불리는 여인. 경국지색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미 온 중화에 그녀와 같은 미녀가 없다고 정평이 나 있을 정도였다. 이 아름다움에 취한 항우는 그녀를 항상 자신의 옆에 데리고 다녔다. 몇만 대군이 자신을 포위했을 때에도, 또 몇만 대군을 이끌고 각 성을 점령했을 때에도 모든 순간을 그녀와 함께했다. 항우는 오직 한 여인만 사랑했고, 한 여인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아―.”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그는 우희의 빛나는 미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달빛보다 신비로운 저 두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항우는 아련한 마음으로 눈을 41 35727 41 14657 0 0 7737 0 0:00:04 0:00:01 0:00:03 7734았다. 그리고 술잔을 턱하니 비운 뒤 닫혀 있던 입을 노랫소리와 함께 열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지만 (力拔山兮氣蓋世) 시세가 불리하니 말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時不利兮骓不逝) 말이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骓不逝兮可奈何) 우희여, 우희여! 너를 어찌해야 하는가 (虞兮虞兮奈若何) 그러자 하염없이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던 우미인도 눈시울을 붉히며 답가를 불렀다. 한나라의 병사가 이미 땅을 차지하였고 (漢兵己略地)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초나라의 노랫소리뿐 (四面楚歌聲) 대왕의 의기가 다하였으니 (大王義氣盡) 천첩이 살아 무엇하리오 (賤妾何聊生) 노래를 마친 우미인은 갑자기 자신과 항우 사이에 놓인 항우의 보검, 초천검을 빼 들었다. 스르릉―. 청명한 소리를 내며 뽑혀 나온 초천검이 영롱한 자태를 뿜어냈다. 우미인의 갑작스런 행동에 장수들이 깜짝 놀라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검 끝은 우미인의 목젖에 닿은 뒤였다.

“부, 부인! 칼을 거두십시오!”

장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희는 눈물을 흘릴 뿐 칼을 거두지 않았다.

“주군……. 소첩은 중화제일검이신 주군의 처참한 죽음을 차마 이 두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피를 먹은 초천검. 그 예기만으로도 어느새 우희의 목이 베여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희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은 항우는 차마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우희…….”

가까스로 입을 연 항우가 그녀를 부르자 우희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주군…….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부, 부인 안 됩니다!”

하지만 장수들이 달려가 우희를 붙잡았을 때는 이미 칼이 그녀의 목을 베고 지나간 뒤였다. 외마디 비명도, 일말의 고통도 없는 죽음. 달려오던 장수들은 우희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 칼이 타고 지나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던 항우는 술잔을 떨어뜨렸다.

“큽…… 크읍…… 크흐흡…….”

붉어진 얼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핏줄이 곤두선 두 눈동자. 그는 차오르는 울음을 애써 삼키고 있었다.

“우…… 우희…….”

그는 피를 흘리며 절명한 우희에게 천천히 기어갔다. 하지만 더 이상 그녀의 청명한 목소리도, 꽃보다 아름다운 그 미소도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아―.”

항우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우희의 몸을 자신의 무릎 위로 올리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대, 대왕!”

“대왕!!”

항우라는 사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우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해진 것에 대한 슬픔이 컸기에 그런 것이었을까. 장수들은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그렇게 한동안 넋을 잃은 채 죽은 우희를 바라보고 있던 항우는, 가냘픈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던 초천검을 들어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던 손을 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곧…… 따라가겠소. 우희…….”

항우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선 장수들에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묻겠다.”

그러자 장수들도 통곡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있던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

“예. 대왕!”

하지만 이어진 항우의 목소리는, 그동안 보여 온 모습과는 다르게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날…… 따를 자는 따르라. 난 오늘 이 팽성을 나갈 것이다.”

“주, 주군!”

“주군! 그,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이미 한군의 20만 대군이 이곳 팽성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아군의 수는 1만이 채 되지 않습니다.”

장수들의 거센 반대에도 항우는 여전히 혼을 잃은 듯한 눈빛으로 꺼져 가는 목소리를 이어 갔다.

“난…… 너희에게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 하옵시면…….”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날 따를 자만 따르라. 내가 이 성을 혼자 나서게 된다 해도 너희들을 원망치 않을 것이다.”

“대, 대왕…….”

항우는 그렇게 장수들의 만류를 뿌리친 채 전각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팽성 밖으로 나가 포위망을 뚫는다면 저들은 더 이상 팽성을 포위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너희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거라.”

“대왕! 대왕!”

“아니 되옵니다. 대왕!”

장수들이 뒤를 쫓으며 그를 만류하려 했지만, 항우는 멈추지 않고 아성을 나와 팽성 동쪽 성문에 다다랐다. 알싸한 밤바람이 성문 앞에 선 항우의 뺨을 시리게 했다.

“후우―.”

내뱉는 한숨에 피어오르는 입김들. 그 흐릿한 입김 속에 여러 회상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이룩한 천하. 자신이 이룩한 업적. 또한 자신이 저지른 학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를 이 두 손으로 쏟게 했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의 원혼을 자신의 칼로써 쪼개었던가.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항우를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하늘이 미루고 미루던 그의 과거를 청산해야 할 때였다. 항우는 그때가 드디어 왔음을 깨달았다.

“결국…… 아무도 없는 게로군.”

그의 뒤에서는 바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약간의 기대를 품고 있던 그의 두 눈빛이 천천히 힘을 잃었다. 아성을 나설 때만 해도 자신을 만류하던 장수들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전장으로 나서기 위해 자원하는 병사 또한 단 하나도 없었다.

“훗―.”

텅 빈 공간을 바라보는 항우의 눈엔 쓸쓸함이 감돌았다. 하지만 원망은 하지 않았다.

“업보려나?”

결국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자초한 일이니까. 다시 걸음을 옮긴 항우는 팽성 동쪽 성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이 성문만 열면 성 밖에 대치하고 있는 한나라군과 맞닥뜨리게 되리라. 턱―. 그는 성문에 한쪽 손을 올린 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후우―.”

한 말의 숨을 내뱉을 때마다 느껴진다. 저 밖에 있는 적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또 얼마나 자신을 증오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그는 의지를 굳혔다. 칼을 쥔 그의 손에 튀어나온 핏줄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후회는…… 없다.”

항우가 성문을 밀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초천검을 뽑으려는 찰나.

“대왕……!”

그의 뒤로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초록 갑주를 입은 기마대가 초(楚)의 깃발을 펄럭이며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들을 이끌고 온 장수 정장이 느릿한 어투로 목청을 높였다.

“대왕……! 어찌…… 주군의 초마대(楚馬隊)를…… 두고 혼자…… 가십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항우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희들…….”

항우가 전장을 누비며 키워 온 그의 친위대이자, 중화 제일의 기마대로 칭송받는 초마대. 1만에 달했던 그 수는, 숱한 전쟁을 겪으면서 이제 800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저들 눈빛에 담긴 의기만은 능히 100만 대군에 달했다.

“대왕께서는…… 혼자가…… 아니십니다.”

초마대 대장 정장의 말이었다. 그의 느릿한 말투 때문에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저 목소리가 반가웠다.

“하―.”

정장과 함께 충직한 얼굴빛으로 항우 앞에 서 있는 초마대를 바라보며, 항우는 허탈한 미소를 작게 터트렸다. 여전히 자신을 믿고 따라 주는 이들이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가 너희들에게 묻겠다…….”

잠시나마 흔들렸던 눈빛를 가라앉히고, 항우는 무장한 800기의 초마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중화제일검……. 발검무생(拔劍無生)…….”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일인군단이라 불리는 나, 무신 항우가 너희들에게 묻겠다!”

귓가를 요동치는 그의 목소리에 그들은 자세를 곧게 잡으며 외쳤다.

“하문하십시오. 대왕!”

“정녕…… 나를 따르겠느냐?”

“…….”

그의 물음에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초마대 병사들은 자신의 심장이, 혈맥에 흐르는 자신의 피가 더욱 뜨거워짐을 느꼈다. 촤아앙―! 그들은 칼을 뽑아들어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답을 대신했다. 항우는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자신을 따라 주는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고픈 자신의 어리광을 스스로 비웃듯. 초마대 대장 정장이 금색 갈기털을 자랑하는 검은 말 하나를 끌고 와 항우에게 건넸다.

“오추마에…… 오르십시오……. 주군……. 초마대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주군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본래 용이었다가 말로 변했다는 전설의 오추마. 그 성정이 난폭해서 그 누구도 감히 다루지 못하지만 오직 항우에게만은 충성을 다하는 애마였다. 그 생명도 자신의 주군을 위해 싸울 의지를 다졌던 것일까. 푸르릉―! 강한 콧김을 내뿜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오추마의 의기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항우는 안장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는 성문을 응시하며 호기롭게 외쳤다.

“오늘 우리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오오―!”

“성문을 열어라―!”

그들의 대답과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동쪽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우는 오추마에 걸려 있던 대추(大椎)를 꾹 부여잡았다. * * *

“흐아암―.”

번을 서고 있던 보초병들의 입이 찢어져라 벌어지고 있었다. 우우―. 한쪽에서는 포로로 붙잡힌 초나라 병사들의 노래가 이어졌다.

“미치겠군. 대장군은 왜 저런 노래를 부르게 해 가지고…….”

“그러게나 말이야. 사람 졸립게시리.”

가뜩이나 잠이 몰려오는 밤중에 초나라의 우울한 노랫소리까지 들어야 하니, 졸음을 견디지 못한 보초병들은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항우가 나오기는 할까?”

“글쎄. 이미 우리 한나라 군대 20만에 포위를 당했으니 제깟 놈이 뭘 어쩌겠어? 항복해야지.”

“근데 정말 성 밖으로 뛰쳐나오면 어떡하지? 혼자서도 수천을, 아니 수만 명을 상대했다고 하던데.”

“미친……. 그런 헛소문을 믿는 거야? 어떻게 사람이 혼자서 수천수만을 상대할 수가 있겠어? 그게 가능하면 신이지 사람이냐? 그냥 초나라 놈들이 부풀려서 말한 것뿐이야.”

“그렇겠지?”

“그럼. 그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우리 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나오겠어?”

그들은 그렇게 말을 나누며 각자 몰려오는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우우―. 그리고 초나라의 노래는 계속되었다.

“아. 정말 미치겠네. 저놈의 노랫소리 때문에 진짜…….”

“내가 항우 그놈이 정말 밖으로 나오면 말을 안 해요. 그런데 죽어도 나오지 않을 놈을 왜 대장군께서는 떠나간 연인 기다리듯 애태우며 기다리시는 건지…….”

“나오기만 해 봐라. 아주 그냥 창으로 작살을…….”

콰콰쾅―!! 보초병들이 짜증 섞인 말들을 내뱉을 때, 갑작스레 천지가 울리는 굉음들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갑자기 어디서 이런 소리가……!”

우워어어―!! 거대한 포효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그 덕분에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들의 졸음이 확 달아났다.

“헉! 뭐, 뭣!”

“도대체 무슨 일이야!?”

혼란은 순식간에 보초병들을 흔들어 놓았다. 그 사이 허공을 찢는 파공음과 함께 저 멀리서 빛이 번쩍였다.

“우아악―!”

그리고 병사들이 신음을 터트리는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그 무시무시한 이름과 함께!

“하, 항우다! 항우가 나타났다!”

“뭐?! 하, 항우!?”

곧이어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자 병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는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천하제일검 항우! 항우가 온다!”

“도, 도망쳐!”

“으아아!”

방금 전만 하더라도 항우가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그들이었다. 그를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던 병사들.

“도망쳐라! 항우가 왔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두려움에 질린 채, 맹수에 쫓기는 어린아이처럼 도망치기 바빴다. 항우가 나타났다는 소리 한 번에 수천의 군사들이 뒤로 도망쳤다. 마치 썰물이 빠져나간 듯, 그 일대의 공간이 깨끗이 비워졌다. 이어서 둔중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긴 철몽둥이를 꼬아 잡은 채 검은 늑대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망토를 입은 항우. 그는 직접 육편으로 만들어 준 적의 시신들을 밟고 지나갔다. 그들의 얼굴을 으깬 철몽둥이에서는 내장 섞인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항우가 온다!!”

한군의 반응도 과연 빨랐다.

“방패벽을 쌓아라!!”

“오오오!”

편장들의 명령에 적들은 철방패를 들고 와 바닥에 꽂았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방패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꽂히자, 긴 횡대로 이루어진 방패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방패벽 사이로 날카로운 장창들이 솟아나오며 철벽같은 방진을 이루었다. 턱―. 항우는 꼬나 쥐었던 대추를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그의 두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 왔다. 수많은 적들을 향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오직 적을 죽여 없애고야 말겠다는 살의와 광기가 그를 사로잡기 시작한 것이었다. 항우의 손에 들린 대추가 부르르 떨렸다. 전쟁이 선사하는 흥분감에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그의 두 눈에서는 시퍼런 광기가 서리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이…… 주군을 뵙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겠군요.”

항상 그랬듯 그의 곁에 나란히 선 정장. 그의 느릿한 목소리에 항우는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언제 이런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그 한마디에 정장은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정장의 웃음에 항우는 그를 힐끗 바라봤다.

“이런 말이 있지. 무신불사(武神不死). 무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이다.”

“…….”

정장의 무거운 침묵에 항우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신(神)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봤느냐?”

그리고 그는 말고삐를 높이 잡아당겨 말의 앞발을 높이 올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가 이길 것이다. 정장.”

“대왕……!”

그 말을 끝으로 항우는 우악스럽게 소리치며 대추를 높게 뻗었다.

“모두 따르라!”

그는 짧게 명을 내린 뒤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추마가 맹수처럼 포효했다.

“우오오―!!”

800의 병사들과 함께 돌진하는 항우! 그에게 적들을 향한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을 쓰러뜨릴 자가 없다는 신념.

‘천하에 나를 쓰러뜨릴 자는 없다!’

그 신념 하나로 무장한 항우가 수십만의 군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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