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닷컴] 오라,여름이여 (허미란)
오라,여름이여
허미란
허미란
5월이 간다.
덩쿨장미가 붉디 붉어도, 저녁바람이 살랑거려도 이제는 봄이라고 우길 수가 없다. 총총한 숫자들 사이로 소리도 없이 6월이 스며든다. 태양이 서서히 대지를 뜨겁게 달구며 더위를 몰고 올 것이다.
나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찌는듯한 무더위와 끈적임이 싫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깨우며 울어대는 개구리울음소리도, 매미울음소리도 너무 처량해서 반갑지가 않았다. 폭풍우가 홍수를 몰고와서 인간의 삶을 여지없이 쓸어버려서 싫었다. 여기저기 쏘다니며 병균을 퍼뜨리는 파리떼도 싫었고 흡혈귀 모기떼는 더욱 싫었다. 허나 올해여름은 어쩐지 기다려진다. 기왕지사 어찌됐든 어차피 오는 여름, 올해부터는 일부러라도 환대해보자고 마음을 바꿔본다. 여태껏은 어쩔수 없이 받아들인 계절이지만 인생의 여름도 져버린 마당에 계절의 여름이라도 화해하며 지내고 싶다.
50중턱을 넘은 내 현주소를 두고 선배들은 아직 한창 젊었다고 하고 후배들은 진즉 가을이 아닌가하며 민망해 한다.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있는 걸까. 내인생의 봄은 져버린지도 오래됐다. 여름도 져버린것 같다.그러면서도 파묻어두었던 유년의 꿈에 늦게나마 삽질을 해보는 지금, 제법 뿌듯함을 느끼게 되어 그나마 젊게사는 친구에게 우리는 어쩌면 여름의 봉선화가 아닌가 말해 보았다.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뛴다. 무슨 소리! 우리는 민들레야, 민들레! 하하, 내일모레면 회갑인데도 봄, 봄이라고 우긴다. 마음은 꽃다운 청춘이란다.
친구의 머리에 아직 흰머리가 눈에 띄지 않고 얼굴에 잔주름이 없는 리유를 이제야 비로서 알겠다. 나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 마음의 이모작터전에 파란꿈 다시심고 어김없이 오는 계절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겠다.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내마음의 터전에 뿌린 그 씨앗이 자라는 걸 보며, 친구들의 꿈나무에 열리는 열매도 구경하며 하늘과 땅과 땅사이에 있는 모든것들을 반기리라. 흘러오는 먹장구름과 쏟아지는 비방울과 찌는듯한 더위도 즐거워할 것이니, 오라 여름이여, 가을이여. 그리고 눈물뽑고 살갖찢으며 이 마음까지 꽁꽁 얼어들게 하는 긴긴 겨울이여, 오라. 바뀌는 계절속에, 흐르는 세월속에 봉선화도, 들국화도, 하얀 눈꽃도 이쁘게 수놓아 줄테니.
5월도 아직 몇일 남았는데 중국에서 한국에서 일본에서,여기저기에서 친구들로부터 여름축하 문자메세지들이 날아든다. 친구들은 아마 내가 여름을 좋아 하는 줄로 알것이리라. 내 생일이 6월달에 들었는지라 생일일면 친구들이 준비한 생일축하파티에서 즐겁고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여름을 싫어한다고 말한적 없었으니 말이다. 올해에도 나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이제부터 여름을 즐기며 살아 갈 것이기에.
오늘 저녁엔 화이트와인잔에 여름을 동동 띄워 '쨍' 소리나게 부딪쳐보고 싶다.
[문학닷컴] 코로나의 겨울에도 봄이 오네요 (허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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