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닷컴] (수필) 봄날은 간다 (서가인)
수필
봄날은 간다
서가인
봄은 참 좋은 계절이다. 일 년의 첫 계절이어서 좋고 일 년의 시작이어서 좋다. 추운 겨울을 참고 견디면서 봄을 맞아 앙상한 나뭇가지에 싹이 트고 꽃봉오리가 솟아오르고 꽃이 핀다. 자연의 법칙으로 인간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을 안겨 주는 것이다. 자연은 변함없는데 2020년의 봄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 때문에 지구상의 인간들은 모두 집에 갇혀 있게 되였다. 인간이 활동을 멈추니 하늘은 투명해졌고 도시의 공기도 산속의 공기와 별반 다름없게 되었다. 어른들은 그런대로 집에 있으며 온라인으로 일을 할 수 있는데 천방지축 아이들이 문제다. 2월부터 미루던 개학은 5월이 다가오는데도 아직도 명확히 개학날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1
창닝취(长宁区)에 사는 조카딸의 아들 현준이가 우리 집에 와서 있으면서 두 주일 정도 놀다가 집에 돌아가서 한 주일 있다가 또 우리 집에 오곤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상해에 와서도 일본 학교에 다니니 구정에 처음 놀려 왔을 때는 조선어를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해서 대화가 안돼 무척 답답했다. 그런데 석 달 사이에 완전 조선어로 대화가 가능하게 되였다. 만약 그냥 일본 학교에 다니면서 토요일에 가끔 놀려 왔다면 조선어가 어려워졌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기를 기대하면서도 코로나 때문에 현준이가 조선어를 사랑하게 돼서 기쁘다. 하루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현준이가 서재로 들어왔다.“이모할머니 또 글 쓰세요” “숙제 다 했니” “예.”“이모할머니가가 일본어를 못해서 숙제를 봐줄 수가가 없구나” “ 알아요.”현준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정말 귀여웠다. 딸을키울 때는 몰랐는데 어쩌면 이렇게 귀엽지…….
나는 10년 전만 해도 할머니 소리를 엄청 듣기 싫어했다. 어느 날 백화점에서 우연히, 모임에서 만났던 여자를 만났는데 대여섯 나보이는 여자애를 데리고 정면에서 마주쳤다. 예쁜 옷을 입은 여자애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할머니 안녕하세요”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 듣는 말에 어리둥절해서 잠깐 멍 때리고 서있었다.내가 벌써 할머니 나이가 됐나 하며 얼굴 정도나 아는 여자한테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백화점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에 비친 얼굴과 옷 단장을 다시 살펴보았다. 젊음은 마음뿐이지 조금씩 다가오는 주름은 피할 수가 없었다. 딸을 30대 후반에 낳아서 아직은 손녀 손자가 없어 할머니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인가보다.
“이모할머니 무슨 생각 하세요?” “응-학교에 가지 못해서 재미없지?” “예. 이모할머니 같이 놀아 주면 안 돼요?” “미안하구나. 지금은 조금 바빠서…” “이모할머니 글 쓰면 돈이 나오나요?”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일곱 살짜리가 하는 말이…. “그런 건 아니고, 이다음 책을 내면 그때 가봐야 해” “우리 아버지는 이모할머니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월급이 많이 나와요” "그렇구나. 너의 아버지는 대단하신 분이구나.” 현준은 아버지를 칭찬하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갑자기 나의 손등에 키스하더니 돌아서서 나가며 방문을 가만히 닫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무척 좋아하는 현준은 하루에 적어서 한 번은 전화한다 그런데 일어로 하니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똑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는 월급을 받는데 이모할머니는 없다고 하니 아버지가 엄청 우러러 보이는 모양이다. 코로나19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니 현준은 매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두 시간식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혼자서 공부한다. 어떤 때는 살그머니 다가와서는 숙제 하는옆에 있어주면 안 되는가고 묻는다. 그의 사유로는 돈도 안 나오는 글을 왜 쓰는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현준이 덕에 매일 한시간씩 숙제하는 현준이 옆에 앉아서 평시 읽기가 힘든 책 몇 권을 끝가지 읽을 수가 있었다.
현준이가 지난 토요일에 제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면 편히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정작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글이 나오지 않고 자꾸 서재의 문만 바라보게 되였다.엣말에 사람이 들어온 자리는 티가 안나는데 나간자리는 금방 보인다고 했다.현준이가 무척 보고 싶다. 갓 배운 조선어가 재미난지 살그머니 들어와서는 옆에 서있다가 이것저것 물어본다. 나는 저도 모르게 서재 문을 열고 복도를 바라보며 어느 문 뒤에 숨었을까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보았다. 현준의 얼굴이 삼삼히 떠올라 글 쓰는 게 집중이 안 되였다.어제 동영상으로 한참 서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언제 오냐고 물었더니 5월에도 학교가 개학하지 않으면 오겠다고 하였다 미리 오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이모할머니 집에만 가있으면 아빠 엄마 여동생의 얼굴을 잊어버릴 수가 있다고 하였다. 조선어로 또박또박 말하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가족이라는 게 무엇인지….
2
구정을 쇠고 서울에 가서 수강도 듣고 여행도 하려던 계획은 이미 물거품이 된 지가 오래되였고 여기서도 누구도 만나지 못하니 위챗으로 연계하는 것도 점점 시들해진다.만나고 싶은데 서로 눈치를 보다보니 시간이 흘러갔다.
해마다 4월이면 어머니를 모시고 꽃 구경을 갔는데 인지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어머니는 올해는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하도 텔레비에서 코로나19 방송만 하니 어머니도 밖에 나가겠다고 하지 않으신다.
상해의 회사들은 2월부터 거의 다 정상 가동이다. 그런데 대외무역만 하는 회사는 여전히 세계 전체가 안정되어야 주문서를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다. 국내 시장만 하는 회사는 별지장이 없고 치열한 국내시장 경쟁에서 허덕이던 중소형 의료기자재 회사들은 뜻밖에 찾아온 코로나19때문에 대성황을 이루었다.호읍기 장갑 마스크 등은 주문서가 몇 달 후에 납품해도 되는 조건으로 일시불을 받은 상태다.어떤집은 즐겁고 어떤집은 근심에 쌓여 있다.살아보니 세상 돌아가는게 원래 그런것 같다.
식당을 하는 가게들은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고향 친구의 가계는 손님이 절반은 줄었다. 다행히 즐비하게 늘어선 주위의 빌딩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점심때면 몰려나와 식당이 빈자리가 없다. 그런데 저녁은 기본상 손님이 없다고 한다. 술과 안주를 팔아야 돈이 되는데 사람들은 퇴근하면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간다. 코로나19가 많은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바꾸어 놓았다. 5월이면 좋아 지겠지 하며 하루하루 기다린다.
인간은 무엇이든 지나가면 잘 잊어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당하지 않으면 더욱 기억하지 못한다. 4월 하반기부터는 난징루 화하이루 등 상업거리들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지하철도 출퇴근 시간이면 사람들이 출구로 물밀듯 쏟아져 나온다. 다른 점이라면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했다.지구에 코로나19가 없어질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아침뉴스에 국제 전염병 발생과 유행 상황을 보았는데 미국이 세계 확진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어떤 나라이건 모두 빨리 회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0년의 봄이 바야흐로 지나가는 것처럼, 그동안 인류를 괴롭힌 코로나19도 우리 인류를 멀리 떠나가기를 학수고대한다.
2020년 4월 29일 상해에서
조글로문학닷컴 2020년 05월 08일 발표
서가인瑞家人
소설가
자유기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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