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렴광호의 우리말 어원 산책19] 18. 기타
화목련재
[렴광호의 우리말 어원 산책19]
18. 기타
“곱다”
“곱다”는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중세에도 “곱다”라 했습니다. 이 말은 “괴다”(사랑하다)에서 기원했습니다. “괴다”는 “고이다”에서 온 말입니다. 물 같은 액체가 고이면 괴게 되어 썩게 되는데 이를 발효된다고 할 수 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사랑하는 감정도 괼 정도가 되면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하게 되고 또 그래야만 곱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곱다”, “괴다”, “고이다”란 이 단어들은 서로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는 동원어휘라 봅니다.
○ 괼 초ᇰ 寵 <類合 下 22>
“밉다”
“밉다” 는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눈에 거슬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중세에 “믭다”라 했습니다. 이 말은 “믜다”(미여지다, 찢다)와 같은 어원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싶으니 당연히 “밉다”의 기원이 될 만합니다.
○ 惡他 뮈워다 喝退 우리쳐 물리치다 厭物 뮈운 것 <1775 역보 20>
○ 밉다 憎 <1895 국한 128>
○ 믜여 딜 녈 裂 <類合 下 59>
“무섭다”
“무섭다”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꺼려지거나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겁나는 데가 있다.”거나 “두려움이나 놀라움을 느낄 만큼 성질이나 기세 따위가 몹시 사납다.”입니다. 중세에 “므엽-, 므-, 므여우-, 므셥-, 무셥-, 무셔우-, 므의엽-, 므의여우-” 등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의 어원은 “므슴”(무엇)입니다. 인간의 가장 무서운 것이 “모르는 대상, 사물, 현상, 세계” 등입니다. 그러니 가장 요해 못하는 “므슴”(무엇)이 무서울 수밖에 없습니다.
○ 무셥다 怕, 무셥다 恐懼≪1880 한불 258≫
○ 내 ᄯᅩ 므슴 시름ᄒᆞ리오 <月釋 21:49>(내 또 무슨 시름하리오)
“두렵다”
“두렵다”는 “ 어떤 대상을 무서워하여 마음이 불안하다.”거나 “마음에 꺼리거나 염려스럽다.”입니다. 중세에 “두리다”(무섭게 여기다)라 했어요. 이 말의 어원은 “두르다”(에워싸다)입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사람들은 적수한테 “둘러싸이면” 당연히 무서운 마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 곤이 오 내 본 병을 두려워 아니노라 고 <1797 오륜 형:19>(곤이 말하되 내 본디 병을 두려워 아니하노라)
○ 行宮에 도ᄌᆞ기 둘어 (賊圍行宮) < 龍歌 33章>
“당하다”
“당하다”는 “해를 입거나 놀림을 받다.” 거나 “어떤 때나 형편에 이르거나 처하다.”로 쓰입니다. 이말은 한자어 “당(當)”과 “하다”의 합성입니다. 한자 “당 (當)”은 “當田相値也。<說文解字>(當은 밭의 값이 서로 대등하다)입니다. 지금도 중국어에서 “당 (當)”은 “대적하다, 맡다, 균형” 등 뜻으로 주로 쓰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어떻게 되어서인지 피동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듣다”
귀의 기능은 “듣다”이지요. 이로부터 “들다”(入)란 말도 있게 되었지요. 즉 “들어오다”의 “들다”와 “듣다”의 공통의미가 바로 “입(入)”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니 “듣다”는 “들다”와 같은 어원입니다.
○ 시러 法 드러 마 法 듣고 <1463 법화 3:20>(또 능히 법들어 이미 법 듣고)
“걷다”
“걷다”는 당연히 발의 주요 기능이지요. 따라서 “걸음”이란 말도 있게 되었지요. 이 “걷다”의 “걷”은 “가ᄅᆞᆯ”의 “갈 > 갇”과 동원어가 됩니다. 또 이로부터 “가다”란 말도 동원 어휘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두 바지 優鉢羅花ㅅ 줄기로 툐 아니 거르며 五百 술윗 쇼도 다 걷디 아니며 술윗 연자 다 야디거늘 <1459 월석 4:54>(두 상인이 優鉢羅花 줄기로 치되 아니 걸으며 오백 수레의 소도 다 걷지 아니하며 수레 연장이 다 마사지거늘)
“떼쓰다”
“떼”란 목적이나 행동을 같이하는 무리입니다. 중세에 “ᄠᅦ”라 했는데 이 단어는 “ᄠᅦ”(筏)에서 왔다고 봅니다. “ᄠᅦ”(筏)는 반드시 여러 대의 나무를 묶어야만 완성되며 뗏목이 흐를 때는 그야말로 떼를 지어 내립니다. 이로부터 “떼거지”, “생떼”, “떼를 쓰다” 등 표현이 만들어졌습니다. 뗏목이 줄지어 내리듯 막을 수 없는 요구거나 고집을 비유한 것입니다.
“마렵다”
“마렵다”는 변의(便意)가 있을 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중세에 “대소변을 보는 일”을 따로 “ᄆᆞᆯ보기”라고도 했어요. “대변”은 “큰ᄆᆞᆯ보기”, “소변”을 “뎌근ᄆᆞᆯ보기”라 했는데 이 말이 15세기 후에 사라졌어요. “똥 마려운 년 국거리 썰듯”처럼 지금도 이 “ᄆᆞᆯ보기”의 흔적입니다.
“아첨하다”
“아첨하다”는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다.”란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媚悅하다ㆍ미첨하다ㆍ阿媚하다ㆍ阿諛하다ㆍ阿從하다ㆍ諂諛하다ㆍ諂하다.”등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한자어 “아첨”(阿諂)에서 왔습니다.
○ 쥬인의게 아쳠야 이웃 밧 도랑 경계 침졈야 갈지 말며 <1796 경신 65>(주인에게 아첨하여 이웃 밭 도랑 경계를 침점하여 갈지 말며)
“풀다”
“풀다” 는 묶이거나 감기거나 얽히거나 합쳐진 것 따위를 그렇지 아니한 상태로 되게 합니다. 중세에 “플다”라 했어요. 그 기원은 “(코) 플다”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인지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객관세계를 인식하는 기준이 자신에 대한 요해 및 인식에 기초합니다. 때문에 산을 보면 “산머리, 산허리, 산등성이” 등이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위, 동작을 기준으로 주위의 사물과 세계에 대해 묘사합니다.
○ 敢히 코 플며 춤 바며 지져괴며 브지지기 父母 舅姑 겻셔 말며<1632 가언 2:7>(감히 코 풀며 춤 뱉으며 지정거리며 부르짖기를 父母 舅姑 곁에서 말며)
“팔다”
“팔다”는 값을 받고 물건이나 권리 따위를 남에게 넘기거나 노력 따위를 제공합니다. “팔다” 란 말은 “플다”(풀다)와 연관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초기 상업 활동은 물건을 서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자면 자기의 물건을 풀어헤치던 혹은 풀어주던지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팔다”란 말이 생겼다고 봅니다.
○ 혹 밧과 가산을 파라 업을 평안치 아니케 면 <1783 유경상도윤음 2>(혹 밭과 가산을 팔아 생업을 평안하게 아니 하면)
“사다”
“사다”는 값을 치르고 어떤 물건이나 권리를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매매는 반드시 “사고팔아야” 이루어집니다. “사다”의 기원은 “다”(싸다)라고 봅니다. 물건을 팔기 위해 풀어야 하는 것처럼 물건을 사면 보자기 같은 것에 “싸가지고” 가야 합니다. 따라서 “물건 값이나 사람 또는 물건을 쓰는 데 드는 비용이 보통보다 낮다.”도 “싸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매매 활동에서 “賣豆腐”(두부 팝니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두부사세요”라고 합니다. 이 원인은 가능하게 “사다”의 기원과 관계된다고 봅니다.
○ 즈믄 金으로 기르마 사고 온 金으로 갌 머리 뮤라 <1481 두시-초 5:30>(천 금으로 말 길마를 사고 만금으로 갈기와 머리를 꾸며라)
“맞장구치다”
“맞장구치다”는 본래 “둘이 마주 서서 장구를 치는 일”을 말합니다. 맞장구치자면 반드시 서로 밀접한 호응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남의 말에 덩달아 호응하거나 동의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지새다”
“지새다”는 “달빛이 사라지면서 밤이 새다.”라 했습니다. 우리가 “온 밤을 지새다.” 하면 저녁부터 새벽까지의 시간을 말하는데 “지새다”는 결국 “해가 지다”와 “날이 새다”의 합친 말로 해석됩니다.
“점잖다”
“점잖다”는 “언행이나 태도가 의젓하고 신중하다”는 뜻입니다. 중세에 “점다”는 “어리다”(幼)란 뜻입니다. “점잖다”는 “나이가 어리지 않다”에서 온 말입니다.
○ 져믈 유 幼 져믈 티 稚 <訓蒙 上 32>
“예쁘다”
“예쁘다”는 중세의 “어엿브다”(불쌍하다, 가련하다)에서 전이된 말입니다. 아마 약자를 동정하는 마음에서 나중에 “예쁘다”는 의미로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아녀자들에 대해 귀여워하고 예뻐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습니다.
○ 어엿블 휼 恤 <訓蒙 下 32>
○ 내 百姓 어엿비 너기샤 (我愛我民)<龍歌 50章>
“잡숫다”
“잡숫다”를 중세에 “좌시다”라 했어요. “좌 (座)”와 연관될 수 있다고 봅니다. 존대할 대상에 직접 “먹다”를 쓰면 불경하다고 느껴 그대로 “자리 좌(座)”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옛날에 존대법에 직접 존대도 있지만 객체존대도 있고 에둘러 말하는 간접 존대도 많이 썼습니다. 이를테면 존대 대상에 명령법을 쓰지 않는다든가 “주다”를 “드리다”, “있다”를 “계시다”, “선생님의 아드님” 따위 용법입니다.
○ 반 좌샤ᄆᆞᆯ ᄆᆞᄎᆞ시고 (飯食訖)<金剛 上 14>
“주무시다”
“주무시다”는 “자다”의 보충법으로 쓰인 존댓말입니다. 옛날 우리말에서 한자어 숭배를 엄청나게 했습니다. 무엇이나 한문을 써야 존대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니 높일 대상에 대해 그저 “자다”하면 불경스럽다고 생각하여 한자어 “취침”(就寢)이 있지만 “잠잘 침(寢”)에 “시” 존대어미를 붙여 “(침)寢시다”로 새로운 표현으로 말했다 봅니다. “寢”의 상고음은 (黄侃系统:清母 覃部 ;王力系统:清母 侵部 )[*tsǐm]입니다. 그러니 우리말로 옮기면 “짐”으로 될 수 있지요. 다시 말하면 “짐(寢)시다 > 짐으시다 > 주무시다”로 되었다고 추정합니다.
“모시다”
“모시다”는 웃어른이나 존경하는 이를 가까이에서 받드는 일입니다. 중세에 “뫼시다, 모시다” 로 나타납니다. 이 말의 어원은 “뫼”(山)에 “-시다”(존대어미, 종결어미)가 결합된 말입니다. 즉 웃어른은 “뫼”(山)처럼 홀대할 수 없는 대상으로 잘 받든다는 뜻입니다.
○ 내 香水로 브를 고 부텻 舍利 모셔다가 供養리라 <1447 석상 23:46>(내 향수로 불을 끄고 부처의 사리를 모셔다가 공양하오리)
○ 三年이도록 돌아가 뫼시디 아니 이 잇거늘 내티니라 <1588 소언 6:7>(삼년이 되도록 돌아가 모시지 아니 한 자 있거늘 내쳐라)
“차라리”
“차라리”란 “여러 가지 사실을 말할 때에, 저리하는 것보다 이리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차라리”의 어원은 “ᄎᆞᆯᄒᆞ로”(근원:根源)”에서 온 것입니다. 중세에 “찰하로, ᄎᆞᆯ하리, ᄎᆞᆯᄒᆞ로”로 나타납니다.
○ 太白山 그림재ᄅᆞᆯ 東海로 다마가니 ᄎᆞᆯ하리 漢江의 木覓의 다히고져 <松江.關東別曲>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 차라리 한강의 목멱에 가고싶
다)
“청사”
“청사에 기록하다.”란 옛날 종이가 없을 때 푸른 대쪽에 기록한다는 뜻에서 역사기록을 “청사”(靑史)라고 하였으며 뒤에 내려오면서 종이에 기록하는 역사도 “청사”라고 합니다.
“어처구니 없다”
“어처구니없다 ”로 쓰이어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다.”란 뜻입니다. 어처구니란 한옥의 용마루 끝과 처마 끝에 마무리하는 십장생의 동물형상입니다. 집이 오래되고 수리를 하지 않으면 비바람에 쓸려 그 십장생의 동물형상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어처구니없다”라 하던 데로부터 유래했습니다.
“미역국 먹다”
“미역국 먹다”란 미역은 미끈미끈하여 미역국을 입에 떠 넣으면 목구멍으로 잘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이로부터 어떤 시험에서 불합격되거나 일자리에서 떨어지면 미역국을 먹을 때 미역이 잘 미끄러져 넘어가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우성치다”
“아우성치다”는 떠들썩하게 기세를 올려 소리를 지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아우(감탄사) + 성 (聲)”의 결합된 것으로 봅니다.
“영문 모르다”
“영문”은 본래 한자 어휘 “영문”(營門)으로서 고려나 조선시대에 중앙의 각 “군문”(軍門), “감영”(監營)이나 “병영”(兵營)의 큰 출입문을 가리키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용되며 언제 열리고 언제 닫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데로부터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말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얼토당토”
“얼토당토않다”로 쓰이면서 “전혀 당치 않다”, “조금도 관련이 없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말은 “옳지도 당(當)치도 않다”는 말에서 이루어진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옳지도”가 “올토→얼토”로 변하였으며 “당치도”가 “당토” 로 변하였습니다.
“어기차다”
“어기차다”란 “한번 마음먹은 뜻을 굽히지 아니하고, 성질이 매우 굳세다.”란 뜻입니다. 예를 들면 “ 어기차게 반발하다”, “ 어기차게 일을 해치우다.”등입니다. 그런데 조선과 중국 조선어에서 위의 경우도 쓰지만 “(당한 일이) 너무 아름차거나 어이없다.”란 뜻으로 더 씁니다. 이를테면 “어기차서 말을 못한다.” 같은 예입니다. “어기차다”란 말은 한자어 “가슴 억(臆)”과 “차다”(滿)가 합성된 말입니다. 즉 “가슴에 꽉 차다”란 형용사로 “굳게 다진 마음”이나 “어이없는 일을 당한 마음”을 묘사합니다.
“옹고집”
“옹고집”이란 억지가 매우 심하여 자기 의견만 내세워 우기는 성미거나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壅固執傳>(조선 후기의 판소리계 소설)에서 부자이면서 인색하고 불효자인 옹고집이 승려의 조화로 가짜 옹고집에게 쫓겨나 갖은 고생을 하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로부터 유래된 말입니다.
“자린고비”
“자린고비”란 매우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옛날 한국 충주의 어느 부호가 돌아가신 부모의 제사 때에 쓴 지방(紙榜)을 매번 불살라 버리기가 아까워서 기름으로 결어 해마다 제사 때면 다시 꺼내 썼다는 이야기에서 “돌아가신 부모한테 너무 인색하다”란 뜻인 한자 어휘 “자린고비”(玼吝考妣)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미주알 고주알”
“미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을 말하며 “고주알”은 미주알과 운을 맞추기 위하여 덧붙인 말입니다. “미주알 고주알 따지다.”란 속 창자까지 살펴볼 정도로 꼬치꼬치 따지고 든다는 뜻입니다.
“옥신각신”
“옥신각신”이란 말은 “올신 갈신”이라는 말로 “올 때의 열기, 갈 때의 열기”라 는 뜻에서 이루어진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신”은 “신이 나다”에서 쓰이는 것처럼 “열중하였을 때 일어나는 흥겨운 기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올신 갈신”에서 받침 “ㄹ”이 강하게 나면서 “ㄱ”으로 바뀌게 되였습니다.
“안성맞춤”
“안성맞춤”이란 생각한 대로 아주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물건이나 어떤 계제에 들어맞게 잘된 일을 말합니다. 예로부터 경기도 안성(安城) 땅에서 만드는 유기(鍮器 : 놋그릇)가 튼튼하고 질이 좋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안성(安城)맞춤”이란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함흥차사”
“함흥차사”란 “심부름을 가서 오지 아니하거나 늦게 온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에 있을 때에, 태종이 보낸 차사를 혹은 죽이고 혹은 잡아 가두어 돌려보내지 아니하였던 데서 유래합니다.
“평양”
“평양”을 고려시기 서쪽에 있는 수도라는 의미에서 ‘서경’(西京), ‘서도’(西都)라고 하였습니다. 버들이 우거진 수도라는 뜻에서 ‘류경’(柳京)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김인호는 “‘평양’ (平壤)이란 말은 본래 ‘부루나’라는 고유한 말의 리두식표기로서 생긴 말이였다. ‘부루나’란 말은 평평한 곳, 벌판의 땅, 넓은 고장이란 말이다. ‘부루’는 ‘벌판, 벌’, ‘나’는 ‘땅, 터, 지대’를 의미하는 옛날 말이다. 즉 ‘평양’에서의 ‘평’(平)은 ‘강을 낀 넓은 지대, 벌판’을 가리키는 고유말 ‘부루’에 대한 리두식뜻옮김이고 ‘양’(壤)은 ‘땅,지대’를 나타내는 말 ‘나’에 대한 뜻옮김이다. 이러고보면 ‘평양’ 의 원래이름 ‘부르나’는 넓고 살기좋은 땅이라는 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붙인 이름이며 리두로 표기하면서 그러한 특성을 일정하게 반영하고있는 한자로 썼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서울” 이란 본래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곳”이란 뜻입니다. 다른 말로 “경궐(京闕)ㆍ경도(京都)ㆍ경락(京洛)ㆍ경련(京輦)ㆍ경부(京府)ㆍ경사(京師)ㆍ경읍(京邑)ㆍ경조(京兆)ㆍ도부(都府)ㆍ도읍(都邑)”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습니다. 김인호는 “서울”의 어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서울’이란 말의 옛 형태는 부여, 백제, 신라 등에서 다 쓰이였다고 볼 수 있다. <삼국유사>(권 2)에 의하면 부여를 별호로서 ‘소부리’(所夫里), 백제의 수도 광주도 ‘소부리’(所夫里)라 하였다. ‘소부리’는 ‘소부리→서부리→서불→서울’로 변한 말의 옛 형태였다. ≪삼국유사≫(기이 제 2 신라시조 혁거세왕부분)에서는 나라이름을 ‘서라벌’(徐羅伐)이라 함은 당시 ‘서울 경(京)’자의 뜻을 ‘서벌’ (徐伐)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며 더러는 ‘사라’(斯羅) 또는 ‘사로’ (斯盧)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이 자료는 부여, 백제에서는 수도를 ‘소부리’, 신라에서는 ‘서벌’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신라의 경우에 국호를 가리키는 ‘서라벌’, ‘사라’, ‘사로’라는 말과도 기원상 같은 말이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라의 다른 이름인 ‘사라’, ‘사로’는 ‘서라벌(서라버러)’에서 ‘벌(버러)’이 줄어 빠진 형태이다. ......따라서 ‘서라벌’과 그 준말 형태인 ‘사라/사로/서라’는 다 ‘동쪽 의 넓은 땅, 평평한 지대’를 가리키는 말이였는데 그 말이 곧 ‘신라’ 로 된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은 서울이라는 말이 본래는 동쪽의 벌방지대를 가리키다가 수도 일반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서울”의 옛말인 “셔”은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셔 > 셔욿 > 셔울 > 서울”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서울”은 “나라의 수도”란 의미에서 17세기 이후부터는 경기도 “한성”(漢城) 조선 시대의 수도가 오늘날의 서울이었기 때문에,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으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 셔 도기 드러 님그미 나갯더시니 <龍歌 49章>(서울에 도적이 들어 임금이 나가있으시더니)
○ 네 셔울 므슴 일 이셔 가다 <飜老 上:8>(네 서울 무슨 일 있어 가느냐)
○ 임진왜난의 의병을 슈챵여 셔울로 바 향여 강홰 드러가 딕희여<東新續 忠1:38>(임진왜란의 의병을 수창하여 서울로 바로 향하여 강화로 들어가 지키어)
“두만강”
“두만강”의 어원에 대해 종래로 만주어 기원설은 있었지만 상세한 증거를 보지 못했습니다. <滿和辭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 tumen 一萬 tumenula 長白山 东南流する河の名 土門江”(“ tumen 일만tumenula 장백산에서 동남으로 흐르는 강의 이름이다. 토문강 ‘土門江’이라 한다. ) 그런즉 “두만강”이란 말은 만주어로 “만 갈래의 강”이란 뜻입니다.
“해란강”
“해란강”은 중국 길림성 연변의 화룡 인근에서 발원하여, 화룡과 용정을 관통하여 두만강으로 흐르는 강입니다. 두만강의 지류로, 길이는 145km입니다. “해란강” 유역은 옛날 여진인 통치구로서 만주어에서 기원했습니다. “해란”은 만주어로 “Hailan 楡”(느릅나무)입니다. 그런즉 연변지역을 개척하기 전에 강 연안에 느릅나무가 우거졌을 수 있습니다.
부르하통하 연길도심 구간
“부르하통하”
“부르하통하”는 중국 연변지역의 중심 도시인 연길(延吉)시를 가로지르는 강입니다. 이 강의 이름에 대해 버들가지통(柳條通)이라는 설이 있지만 그 해석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부르하통하”란 만주어에서 유래 되었겠다 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하면서도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합니다. <滿和辭典>에 의하면 만주어 “Bulhailan”은 “刺榆”라 했는데 우리말로 “시무나무”라 합니다. 시무나무란 건조한 환경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며, 습한 토양을 좋아하여 하천 주변이나 숲 가장자리에 주로 분포합니다. 내습성(耐濕性)이 강하여 물에 잠겨도 피해가 없습니다. 꽃은 4∼5월에 피며, 수꽃과 양성화가 한 그루에 같이 핍니다. 열매는 6월에 익어 8∼9월까지 붙어 있습니다. 다른 느릅나무속 식물들에 비해 열매가 비대칭이고 종자에 날개가 한쪽에만 달리며 긴 가시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Bulhailan”과 “부르하통”은 발음상 차이가 많습니다. 만주어 “Builha”은 중국말로 “황백자등화(黄白刺藤花)”라 하는데 우리말로 “황백가시나무꽃” 이라 할 수 있어요. “가시나무”란 학명이 아니고 “가시가 있는 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면 “Builha”란 “시무나무 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정도 해석으로 부족합니다. “Builha”는 “브리하” 정도로 되고 “부르하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마침 만주어에 “tun”을 “섬”(岛)이라 하니 “부르하통”의 “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르하통하”란 “부르하(시무나무 꽃) + 통(섬) +하 (河)”로 결합된 이름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시무나무꽃섬의 강”이라는 뜻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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