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렴광호의 우리말 어원 산책17] 16.한복
화목련재
[렴광호의 우리말 어원 산책17]
18. 복장
“옷”
“옷”을 한자어로 “의복(衣服)”이라 합니다. “의(衣)”자는 갑골문을 보면 저고리 모양입니다. “복(服)”은 옷의 총칭입니다. 우리말 “옷”은 중세에도 씌었지요. 이 말은 “옷나모”(옻나무)에서 온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옻나무의 껍질에 상처를 내어 뽑은 진은 옛날에 가구에 칠하는 주요 도료(塗料)로서 “옻칠”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의복(衣服)도 몸에 걸친다는 공통성에 따라 “옷”이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칠하다”란 말도 옻나무 “칠”(漆)에 “-하다”가 붙은 것입니다.
○ ᄂᆞᄆᆞᆫ 밧ᄂᆞᆫ 오ᄉᆞᆯ (人脫之衣) <龍歌 92章>
○ 옷 칠 :漆 <類合 上 26>
“입성”
“입성”(衣)을 중세에 “닙셩”이라고 했어요. 이는 동사 “닙다”(입다)에서 온 말이지요. “입성”은 “닙(입) + 셩(成)”의 합성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리하여 “닙셩 > 입성”으로 되었습니다.
○ 저희 닙셩의 것도 당초예 죽을동 살동 아디 못ᄒᆞ여 <癸丑日記 1:115>(제 입성의 것도 당초에 죽을둥 살둥 알지 못하여)
○ 禮服 니브시고 <月釋 8:90>
○ 벼개와 삳글 것으며 (斂枕簟) <小學 2:5>
“갑옷”
“갑옷”이란 “예전에, 싸움을 할 때 적의 창검이나 화살을 막기 위하여 입던 옷”입니다. 한자어 “갑”(甲)과 “옷”의 결합입니다.
“저고리”
“저고리”는 옛말인 ‘져구리’는 16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이 말의 어원을 따져 보면 중세에 “뎌고리, 뎌구리”(딱따구리)란 비슷한 말이 있었거든요. 이 새의 특징은 나무껍질을 벗기고 구멍을 뚫어 벌레를 잡아먹지요. 때문에 당시에 “뎌기다”(벗기어지다)란 말도 있었는데 “벗다”의 반의어로 윗몸에 입는 옷을 “뎌고리/ 뎌구리”라 했을 가능성이 많지요. “뎌고리/ 뎌구리”는 구개음화되어 “져고리/져구리”라 불렸다고 봅니다.
○ 뎌른 핟져구리와 희무른 비단 비게와 <1510년대 번노 하:50-51>(짧은 핫저고리와 희끄무레한 비단 베개와)
○ 小襖子 저구리 옷 <1690 역해 상:45>
○ 掛子 긴 져고리 <1775 역보 28ㄱ≫
○ 저고리 上衣 <1895 국한 255≫
○ 부리 긴 뎌고리ᄂᆞᆫ 어느 골에 가 잇ᄂᆞᆫ고 <古時調.類聚>(부리 긴 딱따구리는 어느 골에 가 있는고)
○ 뎌길 겹: 掐 <訓蒙 下 22>
“치마”
“치마”를 중세에 “쵸마, 츄마,치마”라고 했어요. 이 말은 아마 입성가운데 제일 오랜 이름으로 짐작됩니다. 한자 “치마 상 (裳)”은 아래옷 모양으로서 남녀 구분 없이 입었습니다. 옛날 옷의 주요 기능은 몸을 보호하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추위를 막기 위해 몸에 둘러야 하는데 이런 옷을 “추위를 막는다”고 “치마”라 했을 수 있지요. 중세에 “춥다”를 “츱다, 칩다”라고도 말했거든요.
○ 그 므리 漸漸 젹거늘 아기란 업고 새 나니란 치마예 다마 이베 믈오 믌 가온 드러 도라 <1459 월석 10:24>(그 물이 적어지거늘 한 아기는 업고 갓난애는 치마에 담아 입에 물고 물 가운데 들어돌아 )
○ 裳 치마 샹 裙 치마 군 <1527 신합 상:31>
○ 帍 쵸마 호 <1527 훈몽 중:7>
○ 裳 츄마 <1527 훈몽 중:11>
○ 裙兒 치마 長裙 긴 치마 <1690 역해 상:45>
“행주”
“행주”란 그릇, 밥상 따위를 닦거나 씻는 데 쓰는 헝겊입니다. 중세에 “ᄒᆡᆼᄌᆞ”라 했어요. 이 말은 “헹구다”와 연관된다고 보면서 가능하게 “헹구는 물건” 이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 ᄒᆡᆼᄌᆞ 抹布 <訓蒙 下 20 抹字注>
○ ᄒᆡᆼᄌᆞ 쵸마 호 帍 <訓蒙 中 13>
“행주치마”
“행주치마”란 부엌일 할 때 치마 위에 덧입는 작은 치마입니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나르던 데서 생긴 이름”이라는 민간어원이 있는데 기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앞에서 말한 “ᄒᆡᆼᄌᆞ”(행주)와 “쵸마”(치마)의 합성어입니다.
○ ᄒᆡᆼᄌᆞ 쵸마 호 帍 <訓蒙 中 13>
○ ᄒᆡᆼᄌᆞ 치마 帍裙子 <譯語 上 47>
“바지”
“바지”를 중세에 “바디”라 했어요. 이 말은 “받다”(받다, 받들다, 바치다)와 어원이 같다고 봅니다. 즉 “(몸을) 받다”라는 의미로 “받 +이(접미사)”의 결합이라 봅니다.
○ 袴 바디 고 <1576 신유 상:31>
○ 衲袴兒 누비바디 甲袴 겹바디 緜袴兒 핫바디 <1690 역해 상:45>
○ 뎌 여러 勇士들이 다 아롱 바지에 거믄 靴를 신고< 1765 박신 3:34>(저 여러 용사들이 다 아롱 바지에 검은 신을 신고)
○ 奉은 바들씨라 <月釋 序 13>
“마고자”
“마고자”는 중국옷 “마괘자”(馬褂子)에서 온 말입니다. 그러나 중국옷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민족이 개량하여 만든 옷이며, “마고자”라는 명칭도 이 개량 된 옷을 가리킵니다.
“몽당치마”
“몽당치마”는 “몽당 + 치마”로 된 말입니다. “몽당”이란 “물건의 끝이 닳아서 몽톡하게 몽그라지거나 몽그라지게 하는 모양”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몽당연필” 따위를 말합니다.
“두루마기”
“두루마기”란 우리민족 고유의 웃옷으로서 주로 외출할 때 입었습니다. 옷자락이 무릎까지 내려오며, 소매ㆍ무ㆍ섶ㆍ깃 따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의(周衣)ㆍ주차의”라고도 했습니다. “두루마기”의 옛말인 ‘두루막이’는 18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두루막이”는 부사 “두루”와 “막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 성긔고 센 紗 두루막이와 <1795 노언-중 하:47>(성기고 센 紗 두루마기와)
“고의”
“고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씌었지요. <鷄林類事>에 “袴曰柯背 裩曰安海柯背”라 기록했어요. 이 이름은 “柯背(ᄀᆞᄇᆡ) > ᄀᆞᄫᆡ > ᄀᆞ외 > 괴 (고이)”로 변했어요. 또 “옷ᄀᆞ외”라고도 했어요.
○ 越ㅅ 겨지븨 블근 외 젓고 燕ㅅ 겨지븨 프른 눈서비 시름외도다 <1481 두시-초 15:30>(월 계집의 붉은 고의 젖고 연 계집의 푸른 눈썹이 시름하다)
○ 裳 고외 샹 <1575 천자문-광주 4>
○ 裩 고의 군, 袴 고의 고 <1527 훈몽 중:11>
“괴춤”
“괴춤”이란 고의나 바지의 허리를 접어서 여민 사이의 준말입니다. 일부 방언에서 “호주머니”도 “괴춤”이라 말합니다.
“괴나리”
“괴나리봇짐”이란 예전에 걸어서 먼 길을 떠날 때에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메는 작은 짐을 말합니다. “괴나리”는 “괴춤에 차는 봇짐”이라는 뜻입니다.
“보따리”
“보따리”란 “보자기에 물건을 싸서 꾸린 뭉치”입니다. “보자기”라고도 합니다. 이 말은 한자어 “보(褓) +따리(접미사)”의 결합으로 봅니다.
“단추”
“단추” 는 17세기 문헌에서부터 “단쵸”라고 나타납니다. 이 말은 한자 어휘 “ 묶을 단 (繵) + 묶을 초 (帩)”의 합성어라 봅니다. 본래 우리 민족 복장은 “뉴구(纽扣)” 없이 고름이나 띠로 동여맸었습니다. 그래서 “단초”(繵帩)라는 말을 썼는데 후에 “纽扣”가 들어오니 여전히 “단초”(繵帩)라 일컫게 되었습니다. 후에 물론 “단초 > 단추”로 되었지요.
“이불”
“이불” 은 잘 때 몸을 덮기 위하여 피륙 같은 것으로 만든 침구의 하나로서솜을 넣기도 합니다. 핫이불, 겹이불, 홑이불 따위가 있습니다. “야금(夜衾)ㆍ포단(蒲團)”라고도 합니다. 중세에 “니블”이라 했는데 “닙셩”(입성)과 같은 어원으로 다만 사용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즉 “닙을 > 니블 > 이블”로 된 것이라 봅니다.
○ 被曰泥不<鷄林類事>
○ 니블와 벼개왜 저즈시니라 (衾枕霑濕)<金剛 下 4>
“요”
“요”를 중세에 “ᅀᅭ”라 했는데 이는 고대 중국어음 “褥”(njiok)에서 전한 것으로 봅니다. 본래 “욕(褥)”은 한자어에서 ‘ㄱ’ 입성자(入聲字)이었는데 ‘ㄱ’이 ‘ㅎ’으로 약화되었다가 없어졌다고 봅니다. 옛날 우리민족의 대부분은 농민으로서 구들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니 구들이 없이 침대 생활을 위주로 하는 남방계 민족들과 달리 꼭 “요”가 필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자어 “욕(褥)”의 차용이라 주장합니다.
○ 오시며 차바니며 니블 ᅀᅭ히며 <釋譜 11:22>(옷이며 차반이며 이불 요며)
“포대기”
“포대기”는 어린아이의 작은 이불로서 덮고 깔거나 어린아이를 업을 때 씁니다. 한자어 “포단(蒲團)”에서 온 말입니다. “포단”은 “부들방석”을 가리켰는데 후에 “요”를 말하기도 하고 나중에 이불처럼 덮을 때도 쓰게 됐습니다. 표준어로 아직도 “포단”이며 조선과 중국 조선어에서 “포대기”라 합니다.
○ ᅀᅭᄒᆞᆯ 포 ᄭᆞᆯ오 안ᄌᆞ며 (累裀而坐) <三綱.孝子.子路負米>
“쌈지”
“쌈지”란 옛날에 담배, 돈, 부시 따위를 싸서 가지고 다니는 작은 주머니를 말합니다. 이 말은 “싸고 다니는 것”이란 데서 진 이름이라고 봅니다.
“베개”
“베개”는 잠을 자거나 누울 때에 머리를 괴는 물건입니다. “베개”를 중세에 “베개, 벼가”라 했어요. 이 말은 “벼다”(枕: 베다)에서 기원된 말입니다.
○ 벼개와 삳글 것으며 (斂枕簟) <小學 2:5>
○ 벼개 침 枕 <訓蒙 中 11>
“솜”
“솜”은 목화씨에 달라붙은 털 모양의 흰 섬유질로서 부드럽고 가벼우며 탄력이 풍부하고 흡습성, 보온성이 있습니다. 가공하여 직물 따위로 널리 씁니다. “솜”을 중세에 “소옴, 소ᄋᆞᆷ, 소음”이라 했어요. 중국에서 “목면(木棉),반지화(攀枝花),영웅수(英雄树)”라 하기까지 했습니다. “솜”이란 말은 “솜솜ᄒᆞ다”(더부룩하다)에서 기원된 말 같습니다. 본래 “소옴”은 버들개지같은 것이나 따뜻한 것도 가리키다가 고려말기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다가 보급시키면서 새로운 뜻으로 씌었을 수 있습니다. 안옥규는 “솝”(裏)이 변하여 “솜”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 兜羅 어르미라 혼 마리오 綿은 소오미니 兜羅綿은 어름티 소오미오 <1459 월석 2:41>(兜羅는 얼음이오 綿은 솜이니 兜羅綿은 얼음같이 흰 솜이오)
○다가 모 比丘ㅣ 東方앳 실와 소옴과 깁과 이 햇 훠와 신과 裘毳와<1461 능엄 6:96>(만일 모든 비구가 동방의 실과 솜과 훠와 신과 裘毳와)
○ 고 솝 검븕게 봇그닐 곱 티 디허 소음애 귀예 고조 <1489 구간 1:29>(살구씨 속 검붉게 볶은 것을 곱 같이 찧어 솜에 싸 귀에 꽂되)
○겨에도 소 둔 오슬 닙디 아니며<1518 번소 9:32>(겨울에도 솜 둔 옷을 입지 아니하며)
○ 소옴 면: 棉 소옴 셔 絮 늘근 소옴 온 溫<訓蒙 中 24>
○ 우옹이 그 젼당 즁의 솜 둔 오슬 으쳐 왈 이거슨 치위 막을 거시니<1852 태상 3:44>(우옹이 그 전당 중에 솜 둔 옷을 가리켜 왈 이것은 추위를 막을 것이니)
“천”
“천”은 실로 짠, 옷이나 이부자리 따위의 감이 되는 물건입니다. “천”은 한자 “錢”에서 온 말입니다. 중세에 “쳔”(錢)은 “돈, 재물”을 가리켰습니다. “전(錢)”은 본래 농기구였는데 후에 교역에 사용되어 돈으로 되었습니다. “전(錢)”의 상고음은(黄侃系统:精母 寒部 ;從母 寒部 ;王力系统:精母 元部 ;從母 元部 ;)[*dzhiɛn]이고 중고음은 (王力系統)[ tsǐɛn]입니다. 그러니 한자음 “전”(錢)[*dzhiɛn]은 상고음에서 온 발음이고 “쳔”(錢)[ tsǐɛn]은 중고음에서 들어온 발음입니다. 중세에 쓰인 “쳔, 쳔량”은 근대에 들어온 말인데 중국 객가어(客家語)에서 [cien]이라 한답니다. “쳔”(錢)이 “밑천”과 같이 “돈, 재물”을 가리키다가 후에는 피륙의 뜻인 포(布)로만 쓰이게 되였습니다.
○ 나랏쳔 일버ᅀᅡ <月釋 1:2>(나랏 재산 훔치어)
○ 쳔량 줄 회 賄 쳔량줄 賂 <訓蒙 下 21>
“바늘”
“바늘”은 옷 따위를 짓거나 꿰매는 데 쓰는, 가늘고 끝이 뾰족 쇠로 된 물건입니다. 한자 “鍼”(針)자는 처음에 참대로 바늘을 만들어 옷을 꿰맬 때 썼기에 “箴”라 했습니다. 후에 쇠바늘이 나오면서 “鍼”자로 바꿨답니다. “바늘”을 <鷄林類事>에서는 “針曰板捺”이라고 하였고 중세에 “바ᄂᆞᆯ”이라 했어요. 이 말은 “ᄇᆡ(布) + ᄂᆞᆯ(刃)”의 합성어로 봅니다.
○ 바ᄂᆞᆯ 아니 마치시면 (若不中針) <龍歌 52章>
○ 바ᄂᆞᆯ 침 鍼 바ᄂᆞᆯ 침 針 <訓蒙 中 14>
“부채”
“부채”의 한자 “선(扇)”은 새의 날개가 여닫는 형상으로 사립문을 가리켰습니다. 후에 같은 재료로 만든 부채를 일컫게 되었습니다. “부채”를 중세에 “부체”라 했어요. “부츠다”(나붓기다)와 어원을 같이 한다고 봅니다. 옛날의 부채는 “새 깃털”로 만들었기에 바람에 쉽게 나부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扇曰 孛采 <鷄林類事>
○ 부채 션 扇 <訓蒙 中 15>
○ 버터ᇰ에 서리 딘 버드른 ᄇᆞᄅᆞ매 부치놋다 (飄飄委墀柳)<杜解9:21>
“적삼”
“적삼”은 “윗도리에 입는 홑옷으로서 모양은 저고리와 같다.”고 합니다. 중세에 “젹삼”으로 씌었는데 “젹삼”은 “젹다”(작다)의 “젹”과 한자어 “삼”(衫)의 결합으로 봅니다. 중세에 “젹다”는 “작다”(小)와 “적다”(少)의 뜻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 根이 크니 져그니 업시 (根無大小) <圓覺 下 一之二 55>
○ 하며 져구믈 묻디 아니ᄒᆞ야 <月釋21:144>(많거나 적음을 묻지 아니하여)
○ 젹삼 삼 : 衫 <訓蒙 中 22>
“윗도리”
“윗도리”는 본래 “허리의 윗부분”을 가리키는데 “위에 입는 옷”도 말합니다. 따라서 지위가 높은 계급도 말합니다. “-도리”는 “돌다”(圍)에서 기원되었다고 봅니다.
“아랫도리”
“아랫도리”는 “허리 아래의 부분”이며 “아래옷”, “지위가 낮은 계급”을 말하지요.
“빨래”
“빨래”는 더러운 옷이나 피륙 따위를 물에 빠는 일이지요. 이 말은 중세의 “ᄲᆞᆯ다”(빨다)에서 기원했습니다.
○ 옷 ᄲᆞᆯ 한 澣 . 浣<類合 下 7>
○ ᄲᆞᆯ 탁 濯 澣 . 浣<類合 下 8>
“세답”
“세답”이란 “빨래”의 방언(전남, 제주, 함경)이라고 합니다. 또는 “더러운 옷이나 피륙 따위를 물에 빠는 일”이라고 합니다. 한자어 “세답”(洗踏)에서 온 말입니다. 조선이나 중국조선어에서 “서답”이라 합니다.
○ 조ᄒᆞᆫ 셰답 (月布) <譯語 上 37>
○ 셰답ᄒᆞ며 바ᄂᆞ질 호ᄃᆡ (洗濯紉縫) <家禮解 2:28>
“멱살”
“멱살”은 “멱”(목의 앞부분)과 “ᄉᆞᆯ”(살)의 결합으로서 본래 “사람의 멱 부분의 살”을 가리키던 데로부터 “사람의 멱이 닿는 부분의 옷깃”도 말합니다.
○ 믄득 도적의 멱 잡고 <東國新續三綱. 孝子圖1:57>
“색동저고리”
“색동저고리”란 “옷소매의 동을 여러 가지 층이 지게 만든 저고리”입니다. 여기서 “색동”(色動)이란 “색을 동 달았다.” 라는 뜻이며, 동이란 한 칸을 의미합니다.
“오지랖”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입니다. 이 일 저 일에 관심도 많고 참견도 많이 하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오지랖이 넓다”고 합니다.
“옷고름”
“옷고름”이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깃 끝과 그 맞은편에 하나씩 달아 양편 옷깃을 여밀 수 있도록 한 헝겊 끈”입니다. 중세에 “골홈”이라 했는데 “골회”(고리)에서 기원됐다고 봅니다.
○ 골홈 及 긴흘 皆曰帶子 <訓蒙 中 23 帶字注>
○ 골회 환 環 <訓蒙 中 24>
“갖옷”
“갖옷”은 “짐승의 털가죽으로 안을 댄 옷”입니다. 여기서 “갖”은 중세의 “갗”으로 “가죽”이란 뜻입니다.
○ 여ᇫ의 갗 爲狐皮 <訓正解例>
○ 鹿皮ᄂᆞᆫ 사ᄉᆞᄆᆡ 가치라 <月釋 1:16>(녹피는 사슴의 가죽이라)
“갓”
“갓”이란 “예전에, 어른이 된 남자가 머리에 쓰던 의관의 하나”입니다. 중세에 “갇”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갇다”(걷다, 거두다)에서 기원했다고 봅니다. 옛날 사내가 결혼 하면 어른 취급을 받고 머리를 땋아 묶던 데로부터 거두어 올려 상투를 해야 합니다. 때문에 “머리를 가두다”란 뜻에서 그 위에 쓰는 것을 “갇”(갓)이라 불렀다고 봅니다. 후에 “갇 > 갓”으로 어음변화 되었습니다.
○ 갇 爲笠 <訓正解例 26>
○ ᄌᆞ식이 갇 스며 아ᄃᆞᆯ 나ᄒᆞ며 (初生子旣長而冠) <呂約 26>
“삿갓”
“삿갓”은 “삿”이 “갓”과 어울려 이룬 말입니다. “삿”(簟)은 본래 “대자리”를 말합니다.
○ 벼개와 삿 가지고 수플 幽僻ᄒᆞᆫᄃᆡ 들오 (枕簟入林僻)<杜詩 9:25>
○ 삳갇 : 篛笠 <訓蒙 中 15>
“감투”
“감투”란 “예전에, 머리에 쓰던 의관(衣冠)의 하나. 말총, 가죽, 헝겊 따위로 탕건과 비슷하나 턱이 없이 밋밋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벼슬이나 직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쓰입니다. 중세에 “감토”라고 했습니다. 한자어 “감두” (坎頭·甘頭)로 표기되었습니다. 류희경은 “<揚子方言>에는 상자류(箱子類)라 하였고, <廣韻>에는 머리를 덮는 것이라 하였다. 고려 우왕 13년(1387)의 관복개정 때에 낮은 계급의 두식으로 감두가 있어 고려 때에도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평민이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솜을 두어 방한용으로 착용하기도 하였으며, 제주도에서는 털로 만들어 겨울에 사용하였다.”고 했습니다.
○ 감토: 小帽 <訓蒙 中 22 帽字注>
“벙거지”
“벙거지” 이란 “무관이 쓰던 모자”인데 “전립”(戰笠)이라고도 했어요. 조선시대 궁중 또는 양반집의 군노나 하인이 쓴 털로 만든 모자를 말합니다. 지금은 모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쓰입니다. 이 말은 “병”(兵)과 “탈거지, 틀거지, 떨거지”의 명사접미사 “-거지”가 합쳐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병거지 > 벙거지”로 되었다고 봅니다.
“패랭이”
“패랭이”란 “댓개비로 엮어 만든 갓으로서 조선 시대에는 역졸, 보부상 같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상제(喪制)가 썼다”고 합니다. “패랭이꽃”과 모양새가 비슷하다고 “패랭이”라 불렀다고 봅니다.
“고깔”
“고깔”이란 “승려나 무당 또는 농악대들이 머리에 쓰는, 위 끝이 뾰족하게 생긴 모자”입니다. 중세에 “곳갈”이라 했는데 “곳다”(꽂다)와 “갓”이 결합된 말이라 봅니다. 즉 “곳갓 > 곳갈 > 고깔”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곳갈 관 冠 곳갈 면 冕 곳갈 건 巾 곳갈 젹 幘 <訓蒙 中 22 >
○ 머리예 곳디 아니ᄒᆞ고 (不揷髮) <杜解 8:66>
“상투”
“상투”란 “옛날 머리카락을 모두 올려 빗어 정수리 위에서 틀어 감아 맨 머리 모양으로서 혼인한 남자의 전통적인 머리모양”입니다. 한자어로는 ‘추계(推髻)’ 또는 ‘수계(竪髻)’라고 했습니다. 중국의 <史記>에 위만(衛滿)이 조선에 들어올 때 “추결”(魋結)을 하고 왔다는 기록과 <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 “괴두노계”(魁頭露紒), 즉 관모를 쓰지 않는 날 상투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상투”란 말은 자체로 만든 한자 어휘 “상두(上頭)”에서 왔다고 추정합니다. “상두(上頭)”의 “두(頭)”자를 중국말 입말의 영향으로 “투”라고 발음 하여 “상투”가 된 것입니다. 중국연변의 지명 “두도(頭道)”를 “투도”라 부른 것도 같은 도리입니다.
“고수머리”
“고수머리”란 “고불고불하게 말려 있는 머리털”을 말하는데 “곱슬머리”의 변형된 발음입니다.
“까까머리”
“까까머리”란 “빡빡 깎은 머리”라는 뜻에서 이름을 단 것입니다.
“떠꺼머리”
“떠꺼머리”란 “장가나 시집갈 나이가 된 총각이나 처녀가 땋아 늘인 머리”를 말합니다. 즉 머리를 떠 올려야 할 나이에 못 올렸다고 이름 진 것입니다.
“몽구리”
“몽구리”란 “바싹 깎은 머리”입니다. “중”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도 쓰입니다. “뭉툭하다”의 “뭉”과 어원상 연관되어 있어 보입니다.
“족두리”
“족두리”란 “부녀자들이 예복을 입을 때에 머리에 얹던 관”입니다. 이 이름은 그 모양새가 “족두리 풀”과 같다고 지은 것입니다.
“댕기”
“댕기”란 “여자의 길게 딴 머리 끝에 드리는 헝겊이나 끈”입니다. 일반적인 단성(澶誠) 댕기의 명칭은 당계(唐紒), 당지(唐只), 단계(檀戒), 단기(檀祺), 단성(澶誠) 등에서 왔다고 하며 한글 표기로는 당게, 당귀, 단기, 당기, 대이, 댕기, 머리띠, 멀때 등 댕기에 다양한 방언도 있다고 합니다. “댕기”란 말은 “당계”(唐紒)에서 유래되어 어음이 변화되었다고 봅니다.
“족집게”
“족집게”란 “주로 잔털이나 가시 따위를 뽑는 데 쓰는, 쇠로 만든 조그마한 기구.”라 합니다. 중세에 “죡졉개, 죡집게, ᄶᅭᆨ집ᄭᅢ”라 했습니다. 중세에 “죡”은 작은 것을 말했습니다. 이를테면 “죡술”(작은 술)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죡집게”란 “작은 것을 집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하여 내거나 잘 알아맞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족집게”라고도 부릅니다.
○ 죡졉개 녑 鑷 <訓蒙 中 14 >
○ 뎌 죡집게 가져다가 (将那些儿来)<朴解 上 40 >
“토시”
“토시”란 “추위를 막기 위하여 팔뚝에 끼는 것.”과 “일할 때 소매를 가뜬하게 하고 그것이 해지거나 더러워지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매 위에 덧끼는 것” 그리고 “사냥꾼들이 매를 팔에 앉혀 가지고 다니기 위하여 팔뚝에 끼는 물건”을 말합니다. 이 말은 중국에서 전해 진 것으로 어떤 사람들은 “套手”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 중국말 “套袖” ( taoxiu)의 발음“토우슈”를 그대로 차용했다고 봅니다.
“품”
“품”이란 “윗옷의 겨드랑이 밑의 가슴과 등을 두르는 부분의 넓이.” 또는 “윗옷을 입었을 때 가슴과 옷 사이의 틈”을 말합니다. 이 말은 “품다”에서 기원한 “품”의 의미가 전이한 말입니다.
“옷깃”
“옷깃”이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으로 “옷기슭”이라고도 합니다. 말은 중세 자료를 보면 그 어원을 알 수 있어요. “기슭”이란 “처마, 용마루”도 말했습니다.
○ 기슭 쳠: 簷(처마) 기슭 ᄆᆡᆼ: 甍(용마루) 기슭 금:襟(옷깃) 기슭 ᅀᅵᆷ: 임(옷깃) <訓蒙 中 24>
“옷섶”
“옷섶”이란 “저고리나 두루마기 따위의 깃 아래쪽에 달린 길쭉한 헝겊”입니다. “옷”과 “섶”(柴)의 결합으로 된 말입니다.
“호주머니”
“호주머니”란 “조끼, 저고리, 적삼 따위에 헝겊 조각을 덧 꿰매어 만든 주머니”인데 우리 고유의 옷에는 주머니를 직접 붙이지 않고 따로 주머니를 만들어서 차고 다녔다합니다. 후에 중국에서 들어 온 것이라 하여 “호”(胡)를 붙여 “호주머니”라고 하거나 또 “개화주머니”라고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방언도 많은데 평안도 “옆차개”, 개성지방에서는 “걸낭”, 황해도에서는 “갑차개, 갭차개”라 합니다. 함경도에서는 러시아어 (карман, 주머니)차용으로 “거르만”이라고도 하며 한국에서는 영어 “포켓”도 씁니다.
“염낭”
“염낭”을 “두루주머니”라고도 하는데 “허리에 차는 작은 주머니”입니다. “옆차개”라고도 합니다. 이 말은 “옆 +낭(囊)”의 합성어로 봅니다. 후에 발음 되는대로 “염낭”이라 표기합니다.
“혼솔”
“혼솔”이란 “홈질로 꿰맨 옷의 솔기”입니다. 여기서 “혼”은 “홑”이 변한 것이고 “솔”은 가장자리를 뜻하는 “시울”이 변한 말입니다.
“고까옷”
“고까옷”은 “어린아이의 말로, 알록달록하게 곱게 만든 아이의 옷”을 이르는 말입니다. “때때옷”이라고도 하고 함경도에서는 “꽃때옷, 고븐우티”, 평안도에서는 “고운 닙성”이라 하며 중국연변에서는 “칠색 단 옷”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사투리로부터 “고까옷”의 어원은 “꽃 같은 옷” 또는 “고운 옷”이란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칠색 단 옷”은 옷감재료로 단 이름입니다.
“우티”
“우티”란 “옷’”의 함경북도 방언이라 합니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여진족과 접촉이 많은 곳으로 이 말은 만주어 “Etuku” (의복)에서 차용된 것으로 봅니다.
“까치설빔”
“까치설빔”이란 “까치설날을 맞이하여 새로 장만하여 입거나 신는 옷, 신발 따위를 이르는 말”입니다. 기실 “까치설”은 “아ᄎᆞᆫ설”(작은설, 섣달그믐)을 잘못 이해하여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빔”의 중세에 “움”(꾸밈, 차림)으로 나타납니다. “빔” 은 “비다” 에 명사형 어미 “-움”이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 것입니다. “움 > 빔”으로 변하여 명절에 입는 옷을 일컫게 되었습니다.
○ 아ᄎᆞᆫ설: 暮歲 <譯語 上 4>
○ 비ᅀᅳᆯ 반 扮 <訓蒙 下 20>
○ 빗난 비ᇫ우믈 願티 아니ᄒᆞ고 (不願榮飾) <永嘉 上 137>
“꼬리치마”
“꼬리치마”란 “허리를 달아 젖가슴에 동이게 된 치마”로서 “풀치마”라고도 합니다. “꼬리처럼 달려있다”는 형상으로 단 이름입니다.
“고쟁이”
“고쟁이”란 “한복에 입는 여자 속옷”입니다. “고쟁이”의 옛말인 “고쟈”는 17세기부터 나타나는데 한자 어휘 “고자”(袴子)에서 온 말입니다. 중세에 “고의, 고의믿”이라고도 했습니다.
○ 고의 군 裩 고의 고 袴 <訓蒙 中 23>
○ 고의믿 다ᇰ 襠 <訓蒙 中 23>
“누비옷”
“누비옷”이란 “누벼서 지은 옷”이라 합니다. 본래 중들의 입는 장삼 “납의”(衲衣)가 “누벼서 지은 옷”이라고 하여 “누비옷”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 比丘ㅣ 누비 닙고 錫杖 디퍼 <月錫 8:92>(비구니가 누비옷 입고 석당 짚어)
○ 누비옷 닙고 (穿着衲襖) <朴解 上 33>
○ 누비옷 니브샤 붓그료미 엇뎨 업스신가<月曲>(누비옷 입으시고 부끄럼이 어찌 없으신가)
“장갑”
“장갑”은 손을 보호하거나 추위를 막거나 장식하기 위하여 손에 끼는 물건입니다. “장갑”이란 말은 한자어 “장갑(掌匣)”에서 온 것입니다. 다른 말로 “수갑(手匣)”이라고도 합니다.
○ 包指 댱갑 <1778 방유 유부:13>
○ 쟝갑 掌甲 <1781-1787 왜해 상:41>
○ 장갑 掌匣 <1895 국한 250>
“버선”
“버선”은 <鷄林類事>에서 “襪曰背戌”, “布曰背”라 하고 중세에 “보션”이라 했어요. “布曰背”를 당시 경제 발전수준에서 보면 “포(布)” 란 “베”를 표기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襪曰背戌”이란 “베신”즉 “베로 만든 신”이 버선의 어원이 됩니다.
○ 袜曰背戌<鷄林類事>
○ 보션 말 :襪 <訓蒙 中 23>
“양말”
“양말”맨발에 신도록 실이나 섬유로 짠 것입니다. 역시 한자어 “양말(洋襪)”에서 온 말입니다. “말(襪)”은 버선이고 앞에 “양(洋)”자는 서구식 왜래 물건이란 뜻입니다. 이를테면 “양복”, “양산”, “양잿물” 등입니다.
“신”
“신”의 한자 “혜(鞋)”는 본디 갖신 재료였는데 신을 가리킵니다. “신”을 <鷄林類事>에서 “성(盛)” 이라 하고 중세에도 “신”이라 했어요. 이는 틀림없이 동사 “신다”에서 왔어요. 아주 오래 된 고유어로서 고려가요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 鞋曰盛<鷄林類事>
○ ᄲᆞᆯ리 나 내 신고ᄒᆞᆯ ᄆᆡ야라 <樂範 處容歌>
“나막신”
“나막신”이란 “나무를 파서 만든 것으로 앞뒤에 높은 굽이 있어 비가 오는 날이나 땅이 진 곳에서 신은 신”입니다. 중세에 “나모신, 나모격지”라 했습니다. 즉 “나모신 > 나무신 > 나막신”으로 변했습니다.
○ 나모격지 木屐 <四解 下 48 處容歌>
“다로기”
“다로기”란 “가죽의 털이 안으로 들어가게 길게 지은 것으로, 추운 지방에서 겨울에 신는다.” 고 합니다. 이 말의 어음구성이나 용도를 봐서 만주어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합니다. 만주어에 “talgimbi”(이긴 가죽)라고 있는데 이 말이 차용되면서 약간의 어음변화된 것이라 봅니다.
“미투리”
“미투리”란 “옛날에, 삼이나 노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을 말합니다. “메트리”라고 16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신 모양새가 “머틀머틀ᄒᆞ다”(우툴두툴하다)하여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봅니다.
○ 즘ᄉᆡᇰ으로 ᄒᆞ여곰 온몸이 머틀머틀ᄒᆞ며 (令獸渾身疙瘩)<馬解 上 85>
“장화”
“장화”는 목이 길게 올라오는 신입니다. 가죽이나 고무로 만드는데 비가 올 때나 말을 탈 때에 신습니다. “장화”란 말은 한자어 “장화(長靴)”에서 온 말입니다. 한자 “화(靴)”가 본래 목이 긴 신입니다. 상고음으로 [xĭuɑ]이니 한자음 “화”는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화(靴)”는 우리말에서 “운동화”, “단화” 등으로 쓰입니다.
“구두”
“구두”는 일본어 “靴クツ” [kutsu])에서 차용된 말입니다.
“모시”
“모시”란 “모시풀 껍질의 섬유로 짠 피륙으로서 베보다 곱고 빛깔이 희며 여름 옷감으로 많이 쓰인다” 고 합니다. <鷄林類事>에도 “毛施背”라 나오고 중세에도 같은 이름을 썼습니다. 모시풀 재료의 이름을 그대로 부릅니다.
○ 苧布曰 毛施背 <鷄林類事>
○ 모시 뵈 시 絁 <訓蒙 中 30>
“무명베”
“무명베”란 “무명실로 짠 피륙”을 말합니다. “면포(綿布)ㆍ명ㆍ목면(木棉)ㆍ목면포(木綿布)ㆍ백목(白木)”이라고도 했습니다. “무명”이란 한자 어휘 “목면”(木棉)으로부터 온 말입니다. “목면 > 무면 > 무명”의 변화과정을 거쳤습니다.
○ 굴근 무면 일 필와 금으로 니와 <1510년대 번역노걸대 하: 273>(또 굵은 무명 일백 필과 금으로 짠 것과)
○ 굴근 목면 일 필과 금으로 니와 <1670 노언 하:62>(또 굵은 무명 일백 필과 금으로 짠 것과)
“자투리”
“자투리”란 “자로 재어 팔거나 재단하다가 남은 천의 조각”을 말합니다. 이 말은 본래 “자토리”로서 “자”는 “尺”을 말하고 “토리”는 “실을 둥글게 감은 뭉치”인데 이들이 결합되어 새로운 뜻인 “자투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투리땅, 자투리시간”이라고까지 씁니다.
“실낱”
“실낱”은 “실의 오리”입니다. “실낱같다”하면 “아주 가늘다”는 의미로 “목숨이나 희망 따위가 가는 실같이 미미하여 끊어지거나 사라질 듯하다.”로 쓰이지요. 이 말은 중세에 “실낫”으로 나타나는데 “실”(絲)과 “낱”(個)의 결합입니다. 조선과 중국조선어에서는 “실날”이라고 합니다.
“실마리”
“실마리”란 “감겨 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를 말합니다. 이로부터 “일이나 사건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첫머리.”도 가리킵니다. 이 말은 중세에 “실머리”이었습니다. 조선과 중국조선어에서는 “실머리”라고 합니다.
“오라기”
“오라기”이란 “실, 헝겊, 종이, 새끼 따위의 길고 가느다란 조각.”입니다. 이 말은 “(실)오리”와 “-악” 접미사가 결합된 말입니다. 즉 “올 +악 > 오락 +이 > 오라기”로 되었습니다.
“가락지”
“가락지”란 말은 “(손)가락”과 한자어 “지”(指)가 어울려 된 말로 분석됩니다. 우리가 “금가락지, 은가락지” 할 때 “반지”(斑指)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고두쇠”
“고두쇠”란 “작두나 협도(鋏刀) 따위의 머리에 가로 끼는 것으로, 날과 기둥을 꿰뚫는 끝이 굽은 쇠.” 또는 “장 문짝 따위에 꽂아 두 쪽의 장식을 맞추어 끼는 쇠”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의 뜻은 민속에서 “명이 길어진다고 하여 어린아이의 주머니 끈에 은으로 만들어 채우는 장식품.”을 말합니다. 17세기 처음 나타날 때 “고도쇠”였답니다. “곧은 쇠”란 의미로부터 온 말이라 봅니다. 그리고 “돈이나 재물 따위를 쓰는 데에 몹시 인색한 사람”을 “구두쇠”라 하는데 “고두쇠”에서 변형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녀”
“비녀”란 “여자의 쪽 찐 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장신구”이지요. “소두(搔頭)ㆍ잠(簪)”이라고도 했습니다. “비녀”의 기원은 중국입니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흥덕왕 때 “비녀”사용 제한 기록이 있답니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 혼인한 여인은 치렁치렁한 머리를 곱게 빗어 둥글게 쪽찌었습니다. 이러한 비녀에는 꽂는 이의 넋을 모으는 마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화장 기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여성이 비녀를 잃거나 빼면 정절이나 긍지를 잃음을 상징했습니다. 허난설헌의 <효최국보체(效崔國輔體)>에 “비녀는 임과의 정표를 상징했다. 외형상 비녀는 남근을 상징하며, 비녀는 남자를 경험한 여자, 즉 기혼녀만이 꽂을 자격이 있었다. 다만 단옷날에 한해서 처녀도 비녀를 찌를 수 있었고, 부인은 새 비녀를 꽂았다.”라 기록했습니다. “비녀”는 신분에 따라 비녀 사용에도 차별이 있었으며 비녀의 명칭도 잠두(簪頭)의 모양에 따라 달랐는데 봉황잠, 용잠, 원앙잠, 매죽잠, 모란잠, 석류잠, 국화잠 등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잠두의 장식은 대부분 길상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특히 부귀와 다남, 장수의 기원을 담고 있었습니다. 일찍 <鷄林類事>에 “頻希”라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중세에 “빈혀”라 했습니다. 이 말은 “(머리) 빗다”와 어원상 연관된다고 봅니다. “빗 +니어(連:이어)”의 결합이라 봅니다. 옛날에 여자들이 머리를 빗고 다음 순서로 “머리를 쪽지고 비녀를 꽂는 일”이기 때문에 “빗 +니어(連:이어) > 빗니어 > 빈혀 > 비녀”로 변화되었다고 봅니다.
○ 箟曰 頻希 <鷄林類事>
○ 빈혀 ᄌᆞᆷ 簪 빈혀 계 笄 <訓蒙 中 24>
○ 져기 피 나 고 시혹 쇠 빈혀를 라 굼긔 니기 지지라 <1466 구급방 상:67>(조금 피나는 데 바르고 혹시 쇠 비녀를 달구어 구멍에 익게 지지라)
○ 비녀 잠 簪 <1895 국한 157>
“가방”
“가방”은 본래 네덜란드어 ‘kaba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네덜란드어 “kabas”를 일본어 식으로 읽은 “鞄 かばん” [kaban]을 차용한 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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