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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렴광호의 우리말 어원 산책16] 15.농사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화목련재

[렴광호의 우리말 어원 산책16] 

농사의 신

15. 농사


“씨”

“씨”를 종자라고도 하지요. “종자”는 한자어 種子에서  온 말이고 “씨”를 중세에 “ᄡᅵ”라 했지요. “ᄡᅵ”는 후에 “씨”로 표기되었는데 “씨앗”의 “씨”나 “씹”과 어원이 같다고 봅니다.


○ 됴  심거든 됴 여름 여루미 <1459 월석 1:12>(좋은 씨를 심거든 좋은 열매 열는 것이)

○ 種 시믈 죵  죵 <1576 신합 하:7>

○ 쉰 무 씨 믈에 세 번을 달혀 <1660 신구 보유:7>(쉰 무씨를 물에 세 번 달여)


“밭”

“밭”은 “육전(陸田)ㆍ전(田)ㆍ한전(旱田)ㆍ한지(旱地)”라고도 했습니다. 중세에도 마찬가지로 씌었는데 “바탕”(일터, 자리)과 어원을 같이한다고 봅니다. 농민들에게 당연히 일터가 “밭”일 수밖에 없었지요.


○ 하리 바리 나모 바티 욀 니언 <1482 남명 下:75>(차라리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될지언정)

○  조샹앳 바 양여 륙촌아 주니 <1518 이륜-옥 16>(또 조상의 밭을 사양하여 육촌아우를 주니)

○ 져근덛 날 됴흔제 바탕에 나가보자 <古時調 尹善道> (잠간 날 좋을 때 밭에 나가보자 )


“귀리” 

“귀리”의 열매는 식용하거나 가축의 먹이로 씁니다. 산지에 심어 가꿉니다. 달리 한자어로 “연맥 (燕麥)ㆍ이맥 (耳麥)ㆍ작맥(雀麥)”이라 부릅니다.  “귀리”의 옛말인 “귀보리”는 17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납니다. “귀보리”는 “귀”(耳)와 “보리”가 결합한 것입니다. “귀보리 > 귀우리 > 귀리”의변화를 해왔습니다. “귀리”란 이름은 열매의 모양을 본 떤 것입니다. 함경도방언에서 “귀밀”이라고도 합니다.


○ 雀麥 귀보리    <1613 동의 3:22>

○ 零大麥 귀우리  <1690 역해 하:9>


“깨”

“깨”의 원산지는 인도, 중국입니다. 한반도에는 본래 기름을 짜는 깨가 있었는데, 이것보다 좋은 기름이 많이 나오는 깨가 수입되면서 본래의 것은 들깨, 새로 들어온 것을 참깨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중세에 “ᄭᅢ”로 나타납니다. 이 이름은 “ᄭᆡ다”와 연관된다고 봅니다. 특별히 향이 나고 고소하기에  “사람을 깨울” 정도라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 추정합니다.


○  듧ᄭᆡ ᅀᅵᆷ  荏 <訓蒙 上 13> 

○  뷔로 면  속읫 기름이 흙 속에 스믜여 드러 곳 人形이 되 <1792 무원 3:94>(비로 쓸면 깨속의 기름이 흙속에 스며들어 곡 인형이 되니)

○ 깨 荏  <1895 국한 15>


“낟알”

“낟알”은 껍질을 벗기지 아니한 곡식의 알입니다. “곡립(穀粒)ㆍ곡식알ㆍ입미(粒米)”라고도 합니다. 중세에 “낟”이라고 했어요. 곡식을 무져 놓은 것을 “낟가리”라고도 하지요. “곡식”이란 발은 중세에 “곡셕”이라고도 했어요. 한자어 “곡식”(穀食)에서 온 말이지요. “낱낱이”에서처럼 “낟”은 본래 “箇箇”를 말하므로 “낟알”이란 “낟(箇) + 알(卵)”의 합성어입니다.


○ 나디라 혼 거슨 人命에 根本이니 <杜解 7:34>(낟알이라 하는 것은 인명에 근본이니)


“곡식”

“곡식” 을 “곡물”(穀物)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의 식량이 되는 쌀, 보리, 콩, 조, 기장, 수수, 밀, 옥수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한자어“곡식 (穀食)”에서 온 말입니다.


“김”

“김”은 중세에 “기슴, 기ᅀᅳᆷ, 기ᄋᆞᆷ, 기음”으로 나타나는데 지금도 일부 방언에서 “기슴, 기음”이라고 하지요. “김”은 “논밭에 난 잡풀”을 말합니다. “김매다”란 이런 잡풀을 제거하는 일이지요. 김인호는 “‘김을 매다’ 라고 할 때의 단어 ‘김’은 동사 ‘깃다’(무성하다)에서 온 단어”라 했습니다. “깃다”의 줄기 “깃”에 결합모음 “으”, 명사를 만드는 뒤붙이 “ㅁ”이 붙어서 “깃―으― >기슴” 과정을 거쳤습니다. 지금도 함경도 사투리를 비롯한 일부 지방의 사투리들에서 “김”을 “기슴, 지슴”이라고 합니다.


○ 아 져근 지비 盛티 몯 며 노내 기미 기 나 야리 니라 <1459 월석 10:19>(아들 적은 집이 성하지 못하듯 하며 논에 김이 무성하여 낫을 헤어버릴 듯 하니라)

○ 기ᅀᅳᆷ ᄆᆡᆯ 호 :薅 <訓蒙 下 5>

○ 기으미 면 곡셔글 해니라  <1579 경민-중 11>(김이 성하면 곡식을 해치니라)

○ 三業 기슴 오매 百福 바티 茂盛니라 <1579 선가 39>(삼업 김을 매오니 백복 밭이 무성하니라)

○ 거 믈을 다히고 기을 조 면 토란이 히 나니라 <1660 신구 보유:16>(가물거든 물을 대고 김을 자주 매면 토란이 배로 나니라)

○ 기음 蕪草         <1880 한불 173>

○ 김 除草 김 다   <1880 한불 173>


“수수”

“수수”의 옛말인 “슈슈”는 17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고 했는데 그보다 더 일찍 16세기에 나타납니다. 리득춘은 중세 중국어발음 “蜀黍” (shǔshǔ)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 했습니다.  


○ 슈슈 : 蜀黍  <1527 訓蒙 上 12 黍字注> 

○ 뎌의 심근 벼 슈슈 기장 보리 밀 <1677 박언 하:37>(저기 심은 벼 수수 기장 보리 밀)


“옥수수”

“옥수수”를 “강냉이ㆍ당서(唐黍)ㆍ옥고량(玉高粱)ㆍ옥촉서(玉蜀黍)ㆍ옥출(玉秫)ㆍ직당(稷唐)”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슈슈”에 “옥”(玉)을 더 붙인 형태입니다. “옥수수”는 진짜  17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납니다. 


○ 玉薥薥 옥슈슈 <1690 역해 하:9>

○ 玉薥薥 옥슈슈 <1790 몽해 하:38>


“강냉이”

“강냉이”란 말은 강남지역의 쌀이라는 뜻에서 “강남미(江南米) >강낭이 >강냉이”로 변화 되여 이루어진 말입니다.


“기장”

“기장”은 五穀의 하나로서 중국고서 《山海經》에 “扶餘之國에 열성(列姓)이 서식(黍食)”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서”(黍)가 기장을 말합니다. “깃다”(무성하다)와 어원상 연관된다고 봅니다. 즉 “깃 + 앙(접미사)”의 결합으로 보니다. 그리하여 “깃앙 > 깆앙 > 기장”으로 되었습니다.


○  거시 기 니 잇니  <救方 상:18>(흰 것이 기장 쌀같은 것이 있나니)

○ 쥐을  기만 머고 <救簡 1:57>(쥐똥을 부셔 기장쌀만큼 먹이되)

○ ᄀᆞᄋᆞᆳ 프리 깃고 ᄯᅩ 퍼러토다 <杜解 2:68>(가을 풀이 무성하고 또 푸르더라)


“조”

“조”는 오곡의 하나로 밥을 짓기도 하고 떡, 과자, 엿, 술 따위의 원료로 씁니다. 동아시아가 원산지로 유럽, 아시아 각지에 분포합니다. 이 이름은 우리말 “작다”와 어원상 연관된다고 봅니다. 가장 작은 것을 “조그맣다”고 할 때 “족”은 어근으로 되는데 기원이 “조”(粟 )라 봅니다.


○ 새 밥 지매 누른 조 섯놋다 <初 杜解 19:43>(새 밥 지을 때 누런 조를 섞는다)

○ 粟 조 속 <訓蒙 上:7>


“쌀”

“ᄊᆞᆯ”을 고대에 “白米曰漢菩薩”<鷄林類事>라고 기록했고 중세에 “ᄡᆞᆯ”로 표기했습니다. “漢菩薩”은 중세어로 말하면 “ᄒᆡᆫᄡᆞᆯ”(흰쌀)로 됩니다. 1392 년에 이씨 조선이 李氏일가들이나 먹는 쌀이라 하여 “리”(李)자(당시 음은 <니>)를 붙이여 “니쌀”로 되었다가 “ㄴ”이 떠러져 나가고 “입쌀”로 되었습니다. 받침 “ㅂ”은 사이음 “ㅂ”이 끼여 발음 되기 때문입니다.


“벼”

“벼” 金源表는 “벼”는 기원 3세기 경에 중국 남방에서 인도로부터 수입하여 재배한 것으로서 한반도에서 삼국시기에 들여온 것으로 봅니다.  “벼”는 인도말의 간접 차용이며 “쌀”을 보살(菩薩)이라 기록한 것은 산스크리트어(梵語)의 “Bodhisatta” 을 중국말로 보살(菩薩) 이라 하고 우리말로  “뽕ᄡᆞᇙ”로 표기 되는 것을 줄이어 “ᄡᆞᆯ”로 표기했다고 했어요.  이것이 후에 “쌀”이 되었다고 합니다.


○ 金바리예 ᄒᆡᆫ ᄡᆞᆯ ᄀᆞᄃᆞ기 다마 <月釋 8:90> (금바리에 흰쌀 가득 담아)

○ 米 色二 <朝鮮館譯語> 


“피”

“돌피”라고도 합니다. 논에서 자라는데 열매는 식용하거나 사료로 씁니다. “피 다 잡은 논 없고 도둑 다 잡은 나라 없다.”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농민들에게 익숙합니다. 이 이름은 “패”(稗)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메밀”

“메밀”은 7~10월에 흰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모여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로 검은빛의 세모진 모양이며, 줄기는 가축의 먹이로 쓰입니다. 달리 “교맥 (蕎麥)ㆍ목맥(木麥)ㆍ오맥(烏麥)”이라고도 합니다. 중세에 “모밇, 메밀”이라고 했습니다.  “메밀”이란 말은 “모(山) + 밀(麥)”의 합성어입니다.


○  이얘 모밀히 몯 니거 민가니 가난 저긔 댱니 주고 <正俗 二 28>(이듬해에 메밀이 못 익어 민간이 가난할 적에 長利 주고)

○ 蕎 모밀 교 < 訓蒙 上:6>


“보리”

“보리”를 중세에도 같은 말로 썼는데 아주 오래 된 것으로 봅니다. 김원표는 보리의 원산지는 아시아 서북 한 대(寒帶)지방으로서 기원전 2천년부터 하(夏)나라 때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보리”란 이름은 중국에서 일찍 불려온 “모리”(麰麳)에서 차용됐다고 했습니다.


○ 보리 래 麳, 보리 모 麰<訓蒙 上 12>


“콩”

“콩”을 중세에도 “콩”이라 했는데 김인호는 “‘콩’이란 말은 ‘따―히→땅’, ‘소히―아지→송아지’, ‘조―히 →종이’와 같이 ‘고―히’로 이루어진 말이다. 우리말의 많은 ‘ㅇ’ 받침이 뒤마디의 ‘히’에서 이루어졌다. ‘히’는 ‘산이’, ‘사람이’와 같은 주격토 ‘이’에 결합자음 ‘ㅎ’이 들어간 형태이며 ‘고’는 고리, 동그란 것을 가리키였다. 지금 ‘단추 코’, ‘그물코’에서 쓰는 것과 같이 끈과 같은 동그랗게 매듭지어 놓은 것, 뭉쳐놓은 것은 ‘고’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농작물의 ‘콩’이란 말은 ‘동그란 것, 돋아난 것, 맺힌 것’을 가리키는 뜻에서 ‘코’와 같은 기원의 말인 ‘고’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고 해석했습니다. 


○ 코ᇰ 爲 大豆 <訓正解例. 用字例 >

○ 코ᇰ 슉 菽 <訓蒙 上 13>


“팥”

“팥을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는다.” 는 지나치게 남의 말을 무조건 믿는 사람을 놀리는 말입니다. 중세에 “ᄑᆞᇧ, ᄑᆞᆾ”으로 나타납니다. “ >  > > 팥 ” 의 변화를 해 왔습니다. 함경도 방언에서 “팻기”라 하는데 중세의 “ᄑᆞᇧ”의 흔적을 보입니다. “팥”은 예로부터 주요 양식이 아닌 만큼 “ᄑᆞᆯ왇”(묵은 밭) 에나 심는다고 “ᄑᆞᆺ”이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  로니 시버 알  브티면 됴니라<救方 下: 21>(팥을 나른하게 씹어 아픈데 부치면 좋니라)

○  爲小豆 <訓解 56>

○ 荳  두 菽  슉 <訓蒙 상:7>


“감자”

“감자”는 중세에 “감저”라 했는데 한자어 감저(甘藷)에서 왔어요. 이는 본래 고구마를 이르는 명칭이지요. 지금도 중국에서는 “감서(甘薯)ㆍ 첨서(甜薯)ㆍ지과(地瓜)ㆍ번서(番薯)ㆍ백서(白薯)ㆍ홍서(红薯)”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지요. 우리말에서는 “마령서(马铃薯)”를 따로 “감자”라 부르고 있지요. 고구마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1760년경이고, 감자가 들어온 것은 1824~1825년 즈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구마”에 대응하는 형태는 1820년대 문헌에 “고금아”라고 단 한 번 나타나므로, 이 시기 이후에 현대어처럼 “고구마”와 “감자”의 의미가 분화되면서 지시하는 식물도 각각 구별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감 蔗 남감 <1880 한불 126>

○ 감자 藷 <1895 국한 9>


“마”

“마”는 여름에 자주색 꽃이 피고 열매는 열과(裂果)를 맺습니다. 실눈은 식용하고 뿌리는 “산약”(山藥)이라 하여 강장제로 씁니다. “산우(山芋)ㆍ서여(薯蕷)”라고도 합니다. 원산지는 중국이며 한반도에 도입된 경위는 확실하지 않지만 <삼국유사>에 백제 무왕의 아명이 서동(薯童)이었으며 마를 캐어 팔아서 생활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부터 식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구황서(救荒書)에도 구황식품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薯童謠”에서 애들이 그토록 맛있어 했다는 “마”(薯)의 어원은 “맛”과 연관된다고 봅니다. 즉 “맛있다”라고 “맛”이라 했는데 후에 “맛 > 맣 > 마”의 변화를 했을 수 있습니다.


○ 마 爲薯藇   <1446 훈해 56>

○ 마흘 여  먹고 혹 허  면을 그라 <1660 신구 3>(마를 캐어 쪄먹고 혹 찧어 가루 면을 만들어)

○ 薯蕷 마   <1613 동의 2:41>


“고구마”

“고구마”의 원산지는 약 2000년 전부터 중·남아메리카에서 재배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당시에는 원주민들이 널리 재배하였는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서 에스파냐에 전해졌고 그 뒤 필리핀, 중국의 복건성(福建省)에 전해졌으며 차차 아시아 각국에 퍼졌습니다.  “고구마”를 “감서(甘薯)ㆍ감저(甘藷)ㆍ남감저(南甘藷)ㆍ단감자ㆍ저우(藷芋)”라고도 합니다. 신라 때 “薯童謠”가 전해질 정도로 “마”(薯) 재배 역사는 아주 오래되고 중세에도 “마” (薯)가 나타납니다. 

 “고구마”라는 이름은 일본어의 음차에서 온 것입니다. “名曰甘藷 或云孝子麻 倭音古貴爲麻” (이름은 감저라 하는데 孝子麻라고도 하며 일본 발음은 고귀위마이다)<海槎日記>( 趙曮1763~1764) 라는 역사 기록이 있고 한글 기록으로는 유희(柳僖)의 《물명고(物名考)》(1824년)에 “고금아”라는 형태가 등장합니다. 이는 쓰시마 방언을 기록한 것으로, 지금도 쓰시마 지방에서는 고구마를 고코이모(孝行芋, こうこいも)라 부릅니다. 이 “고코이모”라는 이름은 가난한 효자가 고구마로 부모를 봉양(孝行)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 낱말은 일본의 대마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잘 쓰이지 않으며, 오늘날 일본에서는 고구마를 가리켜 과거 사쓰마 번의 이름을 딴 이름인 '사쓰마이모(薩摩芋)'라고 부릅니다.


○ 마 爲薯藇 <訓解 56>

○ 薯 마 셔 藇 마 여 <1576 신합 상:7>


“뚱딴지”

“뚱딴지”는 꽃과 잎이 감자같이 생기지 않았는데 감자를 닮은 뿌리가 달려서 “뚱딴지(绝缘子, 瓷瓶)  같다”고 뚱딴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뿌리를 사료로 써서 돼지가 먹는 감자라고 “돼지감자”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갓”

“갓”을 한자로 개채(芥菜) 또는 신채(辛菜)라고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12세기 주(周)나라 때 이 종자를 향신료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한반도에서도 중국에서 들여온 채소류로 널리 재배했습니다. “芥”의 상고음은 (王力系统:見母 月部 ;) [keat]으로 됩니다. 즉 “갓”의 발음과 아주 비슷합니다. 이는 절대 우연이 아니라 중국에서 “芥” [keat]란 채소가 들어올 때 그 발음도 같이 받아들여 왔으며 오래 사용하는 과정에 고유어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 갓   <동의보감 탕액편(1613)>


“겨자” 

“겨자”씨는 누런 갈색으로 익는데 양념과 약재로 쓰고 잎과 줄기는 식용합니다. 이 이름은 한자어 “개자” (芥子)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중세에도 “계, 겨”로 씌었습니다.


○ 우리 聲聞엣 사 如來 가비니 계  湏彌山애 견주며 <月釋 4:28>(우리 聲聞에의 사람을 여래께 비기니 겨자 쪽을 수미산에 견주며)

○ 파 부 마 댓무 화 박 계 쉿무 시근 다마 <飜老 下:38>(파 부추 마늘 무 동아 박 겨자 쉰무우 시금치 다시마)

○ 계 개 芥 <訓蒙 上 7>  



“고추”

“고추”는 여름에 흰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하나씩 피고 열매는 장과(漿果)이다며 잎과 열매를 식용합니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온대, 열대에서 널리 재배됩니다. “당초(唐椒)ㆍ번초(蕃椒)”란 이름도 있어요. “고추”는 우리 민족이 즐겨 먹는 작물인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중세에 “고쵸” 라고 했어요. 한자어 고초(苦椒)에서 왔다고 봅니다. 평안북도나 함경남도에서 “댕가지”라고도 하는데 이는 “唐 + 가지”의 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쵸”는 후에 의미 변화를 가져와 본래 “후추”(胡椒)를 가리키던 데로부터 지금의 “고추”(辣椒)를 말하게 되었지요. 또 吏讀문헌에서는 “고쵸”(苦草)라고도 표기했었거든요. 이런 변화는 16세기 후부터이니까 매운 음식을 즐겨 먹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요. 栗田英二 은 일본사람이 “고쇼”라고 부르던 것이 전해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 고쵸 라 수레 머그라    <1489 구간 1:32>

○ 椒 고쵸 쵸    <1527 훈몽 상:6>

○ 秦椒 예고쵸 胡椒 호쵸   <1778 방유 술부:28>

○ 秦椒 고쵸    <18세기 후반 한청문감 12:41>

○ 고초 辣子    <1880 한불 198>


“느타리” 

느타릿과의 버섯으로서 모양이 조개껍데기와 비슷하며 줄기는 대개 짧으나 긴 것도 있습니다. 갈색 또는 흰색으로 늦가을부터 봄에 걸쳐 삼림 속 활엽수 마른나무에서 자라며, 식용합니다. “느타리”를 함경도방언에서 “늦시리”라고도 합니다. “느타리”란 말은 “늦게 살아난 버섯”이란 의미라 봅니다.



“박” 

“박”은 삶거나 말려서 바가지를 만들고 속은 먹기도 합니다. 우리민족은 “박”에 대한 전설도 많았고 바가지는 또 옛날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였습니다. “박”을 뜻하는 “포”(匏)는 상고음으로 (王力系统:並母 幽部) [bau]였습니다. 그러니 “박”과 발음도 유사하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실 “박”은 한자 匏에서 온 말 일수 있습니다. 朴씨성을 기어코 “박”과 연계시키는 것은 도리가 없습니다. 朴의 상고음은 (王力系统:滂母 屋部) [pʰɔk]이었으므로 역시 朴의 상고음을 지금도 보존하고 발음 할 뿐입니다. 우연히 “박”과 어음일치가 되어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 박 ᄡᅵ  瓠犀 <詩解. 物名6 >


“호로”

“호로”를 “호리병박.  조롱. 조롱박. 호로과(瓠盧瓜)”라고도 합니다. “호로”란 이름은 한자 어휘 “호로”(葫蘆/壺蘆)에서 온 말입니다.


○  瓠 죠롱호 又瓠子박 形如菜瓜味甘  盧瓜 죠롱로 俗呼瓠盧瓜 又書作胡盧葫蘆 <訓蒙字會 上 4>(용례 호.조롱호. 또 호자는 박이다. 형체는 채과와 같은데 맛이 달다. 로.조롱로. 세속에서는 호로라고 부른다. 또 글로는 호로, 호로로 쓴다.)


“푸성귀”

“푸성귀”란 사람이 가꾼 채소나 저절로 난 나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15세기 문헌에서 “프귀”로 나타납니다. “성기게 자란 풀” 이란 뜻으로 “플”과 “성긔다”(성기다)의 명사형 “성긔”의 합성어로 분석됩니다. 즉 “플 +성긔 > 프성긔 > 푸성귀”로 변했다 봅니다.


○ 草衣 프귀 오시라 <1447 석상 11:25>(초의는 푸성귀 옷이라)

○ 이 사 업슨 히로소니 프엉귀 뷔여 룔 잇부믈 사오나온 모 므던히 너규리라 <1632 두시-중 13:30>(이 사람 없는 땅이로소니 푸성귀 베여 버릴 입음을 사나운 몸을 무던히 여기니라)

○ 푸성귀 草菜物 <1895 국한 333>


“배추”

“배추”는 중세에 “ᄇᆡᄎᆡ”라고 했어요. 중국말 “白菜”의 발음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중국말 학명으로 “송채”(菘菜)라고 한답니다. 그리하여 “ > 배채 > 배추”로 되었습니다.


○ 本草의  리 좁티 싸라 <1542 온역 9>(본초의 배추를 가늘게 좁쌀같이 썰어)

○ ᄇᆡᄎᆡ 쇼ᇰ : 菘 俗呼白菜<訓蒙 上 14> 

○ 白菜  <동문 하:3>

○ 白菜  <1690 역해 하:10>


“양배추”

“양배추”는 “배추”에 洋이 붙은 외래 채소이며 일부 방언에서 “대두배추”라 하는 것은 생김새에 따라 한자 大頭를 더 붙인 말입니다.

 

“상추”

“상추”는 유럽이 원산지로 전 세계에 분포합니다. “거와(苣萵)ㆍ와거(萵苣)”라고도 합니다. “상추”는 한자 어휘 “생채(生菜)”를 차용하여 부르면서 발음이 변한 것입니다.  연변 사투리로 “불기”라고도 하는데 “붉은 상추”를 보고 “붉이”라 부른 것으로 봅니다.

 

“부추”

“부추”를 중세에 “부ᄎᆡ”라 했는데 중국말 “구채”(韭菜)가 와전 된 말이라 봅니다. 그리고 “염교, 염규”라고도 불렀어요. 함경북도 방언에서 “염지”라고도 합니다. 


○ 서리옛 염ᄀᆈ 허여호ᄆᆞᆯ 甚히 듣노니 (甚聞霜韮白)<初杜解 7:40> 

○   부 디허 汁을 取야 이베 브라  <1466 구방 상:25>(또 부추를 찧어 즙을 취해 입에 부치라)

○  韮 염교 구 薤 부 혜   <1527 훈몽 상:7>

○  부취 (韭菜)   <1810 몽유 상:15>

○  미나리와 계와 와 파와 마과 부초와 허다 소 일홈이 잇고     <1894 훈아 6>(미나리와 겨자와 배추와 파와 마늘과 부추와 허다한 채소 이름이 있고)


“버섯”

“버섯”은 담자균류와 자낭균류의 고등 균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주로 그늘진 땅이나 썩은 나무에서 자라며, 홀씨로 번식합니다. 송이처럼 독이 없는 것은 식용하나 독이 있는 것도 많습니다. 중세에 “버슷”이라 했어요. 이 말은 “벗다”에서 유래했다고 봅니다. 즉 “땅이나 나무껍질에서 벗어나오다.”는 것을 보고 “버슷”(버섯)이라 불렀다 봅니다.


○ 山中엣 남긧 버슷 毒 마닐 고튜 忍冬草 가지와 불휘와 달혀 汁을 取야 머그라  <救方 下:47>(산중에 나무 버섯 독 맞은 이를 고치되 인동초 가지와 뿌리를 달여 즙을 취하여 먹으라)

○ 木耳 남긧 버슷 <救簡 6:4>

○ 䓴 버슷  栮 버슷  蕈 버슷 심 菌 버슷 균 <訓蒙 上:7>


“마늘”

“마늘”을 중세에 “마ᄂᆞᆯ”이라 했어요. <단군신화>에 마늘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랜 작물인 것은 틀림없어요. “마늘”이란 말의 “마”는 야생감자와 같이 덩이진 것을 의미하며 “”은 예리하고 뾰족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마늘”의 원래 말 “마”은 “덩이지고 뾰족한 것”이란 뜻 을 나타냅니다. “마늘”은 “바 > 바늘”, “가 > 가을”과 같이 뒤마디의 “” 이 “을”로 되는 현상에 의하여 “마늘”로 되였습니다.


“시금치”

“시금치”는 잎에 비타민 이(E)나 철분이 많아 데쳐서 무쳐 먹거나 국으로 끓여 먹습니다. “마아초(馬牙草)ㆍ적근채(赤根菜)ㆍ파릉채(菠蔆菜)라고도 합니다. 중세에 “시근ᄎᆡ”라고 했는데 한자어 “赤根菜”에서 온 말입니다. 어렸을 때 “시금치”라 하니 아주 시군 채소로 여겼는데 기실 신맛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름입니다.


○ 마 댓무 화 박 계 쉿무 시근 다마 <1510년대 번노 하:38>

○ 菠 시근 파, 蔆 시근 <1527 훈몽 상:8>

○ 菠蔆 시근 <1613 동의 2:35>

○ 시근ᄎᆡ 赤根菜 <同文解 下4> 


“파”

“파”는 중국 서부가 원산지이며 “총(蔥)”이라 합니다. “파”란 이름은 잎사귀의 색깔이 “푸르다, 파랗다”고 부른 것입니다.


“오이”

“오이”는 인도가 원산지로 세계 각지에 분포합니다. 중국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황과(黃瓜)”라고도 합니다. “오이”의 본래 어형이 “외”이고 이것이 20세기에 들어 2음절의 “오이”로 변한 것입니다. 중세에 “외”라고 했는데 지금도 “참외” 등에서 부르고 있지요. 혹시 오이를 딸 때 왼손을 자주 썼는지 “외”라고 불렀습니다.


○ 차와 외와로 소ᄂᆞᆯ 오래 머물우ᄂᆞ라 (茶瓜留客遲)<杜解 9:25> 

○ 苽 외 과 <訓蒙 上:7>


“호박”

“호박”은 18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나 현재까지 이어집니다. 당시 “南瓜”를 “호박”이라 했습니다. “胡”는 본래 “중국에서 夷狄을 일컫던 말인데 우리말에서는 북방의 여진족을 주로 가리켰습니다. 그러니 “호박”이란 “胡朴” 즉 “중국에서 들어 온 박”을 말합니다. 관용어로 “뜻밖에 힘을 들이지 아니하고 좋은 일이나 좋은 물건을 차지하다.”를 “호박(을) 잡다”고 말할 정도로 환영받았습니다. 


“수박”

“수박”을 “서과(西瓜)·수과(水瓜)·한과(寒瓜)·시과(時瓜)”라고도 합니다. 아프리카 원산으로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재배되었다고 하며, 각지에 분포된 것은 약 500년 전이라고 합니다. 한반도에는 조선시대 《연산군일기》(1507)에 수박의 재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수박 겉 핥기”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중세에 “슈박”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우리민족이 만든 한자어 “수박”(水朴)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뜻인즉 “물이 많은 박”이란 의미이지요. 


○  보도 안 례지 고 슈박 외 감 <飜老 下:38-39>(마은 포도 용안 여지 살구 수박 참외 감저)


“무”

“무”를 “나복(蘿蔔)ㆍ내복(萊菔)ㆍ노복(蘆菔)ㆍ청근(菁根)”등으로 부르고 중세에 “무ᅀᅮ”라 했어요. “무우다”(흔들다)란 말이 이전에 있었는데 같은 어원으로 짐작됩니다. 즉 무를 뽑을 때의 행위로 이름 지었다고 봅니다.  연변에서 “노배”라 하는데 이는 중국말 萝卜의 발음대로 음차한 말입니다. 


○ 겨 무는 밥과 半이니  히미 나조 새롭도다 <1481 두시-초 16:70>(겨울 무는 밥과 반이니 소 힘이 저녁에 새롭도다)

○ 무ᅀᅮ와 박만ᄒᆞ야 먹더라 <飜小學 10:28>(무가 박만하여 먹더라)

○ 이 둘흘 ᄒᆞᆫᄢᅴ 무워ᅀᅡ (此二雙運)<圓覺 上 一之一 110>(이 둘을 함께 움직여야)


“김” 

“김”은 홍조류 보라털과의 조류입니다. 몸의 길이는 30cm 정도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나 주름이 져 있다. 검은 자주색 또는 붉은 자주색을 띠고 바닷속 바위에 이끼처럼 붙어 자라는데 식용합니다.  “감태(甘苔)ㆍ청태(靑苔)ㆍ해의(海衣)”라고도 합니다.  “김”이란 이름은 “논밭에 난 잡풀”인 “김”을 본떠 붙인 것입니다.


○  파 靑菜 김   <1880 한불 353>

○  김 海衣        <1895 국한 49>


“다시마”

“다시마”는 갈조류 다시맛과의 하나입니다. 길이가 2~4미터이고 몸이 누르스름한 갈색 또는 검은 갈색이며, 바탕이 두껍고 미끄럽습니다. 다른 말로 “해대”(海帶)라 하며 중세에 “다ᄉᆞ마”라 했습니다. “다ᄉᆞ리다”(다스리다)에서 기원된 이름이라 봅니다. “다시마”는 반드시 바다 밑에 내려가 캐 내와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다마 머육 두 을 시서  맛 업게 고 <救簡 2:80>(다시마 미역 두 냥을 씻어 짠 맛 없게 하고)


“미역”

“미역”은 갈조류 미역과의 한해살이 바닷말입니다. 잎은 넓고 편평하며, 날개 모양으로 벌어져 있고, 아랫부분은 기둥 모양의 자루로 되어 바위에 붙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식용으로 널리 이용하였으며 요오드, 칼슘의 함유량이 많아 발육이 왕성한 어린이와 산부(産婦)의 영양에 매우 좋습니다. 중세에 “머육”이라 했습니다. 즉 “머육 >메육 >메역 >미역”의 변화를 했습니다. “머육”이란 “물 + 육(肉)”의 합성이라 추정합니다. 

 

○ 다마 머육 두 을 시서  맛 업게 고 <救簡 2:80>(다시마 미역 두 냥을 씻어 짠 맛 없게 하고)

○ 잇다감 머육과 과 香을 가져다가 주더라 <續三 孝:24> (이따금 미역과 쌀과 향을 가져다가 주더라)



“개암”

“개암” 개암나무의 열매로서 모양은 도토리 비슷하며 껍데기는 노르스름하고 속살은 젖빛이며 맛은 밤 맛과 비슷하나 더 고소합니다. “진자(榛子)”라고도 하며 방언에서 “고욤, 깸” 등으로 부르며 중세에 “개암, 개얌, 개옴” 등으로 나타납니다. “개암”이란 이름은 “개야미”(개미)가 많이 모여드는 나무이기에 이렇게 부른다고 봅니다. 


○ 개암 ᄑᆞ는 이아 이바 (賣榛子的你來) <朴解 下 28>

○ 개얌과 잣과 ᄆᆞᄅᆞᆫ 포도와  (榛子 松子 乾葡萄) <朴解 中 4>

○ 개욤나모 헤오 효ᄌᆞ막에 오니 (披榛到孝子廬) <三綱>

○ 그듸 이 굼긧 개야미 보라 <釋譜 6:37>(그대 이 구멍의 개미 보라)



“딸기”

“딸기”는 지금  나무딸기를 제외하고 야생은 거의 볼 수 없지요. 몇 십 년 전만 하여도  강변이나 마을주변 들판에 야생딸기가 흔했거든요. 그런데 제철을 맞추어 따야지 시기를 놓치면 다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니 “따는 것”이 관건이므로 이름이 “ᄠᆞ다”(摘)에서 기원했다고 봅니다. 중세에는 “ᄠᆞᆯ기”라 했습니다. 


○ ᄠᆞᆯ기 ᄆᆡ 苺 <訓蒙 上 2>

○ ᄠᆞᆯ뎍 摘 <類合 下 46>

○ ᄲᅩᇰ ᄠᆞᄆᆞᆯ 녜ᄀᆞ티 ᄒᆞ거ᄂᆞᆯ (採桑如古)<內訓 2:104>


“멍덕딸기”

“멍덕딸기”는 나무딸기에 비해 잎 뒤에 흰 털이 빽빽이 났습니다. “멍덕”이란 “벌통 위를 덮는 재래식 뚜껑으로 짚으로 틀어서 바가지 비슷하게 만든 것”입니다. “멍덕딸기” 의 꽃받침이 길게 뾰족해지고 샘 털이 밀생하여 “멍덕”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봅니다. 


○ 蓬藟 멍덕기 <東醫 2:19>ㄱ≫


“멍석딸기”

“멍석딸기”는 산록 이하의 낮은 지대에서 흔히 자랍니다. 짧은 가시가 있고  열매는 집합과이며 둥글고 7∼8월에 적색으로 익으며 맛이 좋습니다. 이 이름은 “멍석(網席) + 딸기” 합성어입니다.


“복분자”

“복분자딸기”라고도 하는데 열매는 식용하거나, 발기 불능(勃起不能) 또는 오줌을 자주 누는 데 약용합니다. 이름은 이것을 먹으면 오줌발이 세서 요강을 뒤엎는 다는 의미에서 한자 어휘 “복분자”(覆盆子)라 했습니다.



“도리깨”

“도리깨”는 곡식의 낟알을 떠는 데 쓰는 농구입니다. 긴 막대기 한끝에 가로로 구멍을 뚫어 나무로 된 비녀못을 끼우고, 비녀못 한끝에 도리깻열을 맵니다. 도리깻열은 곧고 가느다란 나뭇가지 두세 개로 만들며, 이 부분으로 곡식을 두드려 낟알을 떱니다. “연가(連枷)”라고도 합니다. 중세에 “도리개, 도리채”라 했는데 “돌리개”란 뜻으로 “돌다”에서 기원을 했습니다. “도리깻열”을 “도리깻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 도리개 <物譜 下>

○ 도리채 가 枷 <訓蒙 中 17>

 

“가래질”

“가래질”이란 “가래로 흙을 파헤치거나 퍼 옮기는 일”이며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기구”를 “가래”라 합니다. 중세에 “ᄀᆞ래”라 했는데 어원은 “ᄀᆞ래다”(가르다)에서 온 것입니다.


“나래질”

“나래질”이란 “나래로 논밭을 고르는 일”입니다. “논밭을 반반하게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를 “나래”라 하는데 그 모양이 “날개”와 비슷하다고 “나래”라 합니다. 중세에 “ᄂᆞᆯ애”(날개)라 했습니다. 


“써레질”

“써레”란 갈아 놓은 논의 바닥을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입니다. 긴 각목에 둥글고 끝이 뾰족한 살을 7~10개 박고 손잡이를 가로 대었으며 각목의 양쪽에 밧줄을 달아 소나 말이 끌게 되어 있습니다. 16세기 문헌에서부터 “서흐레”가 나타납니다. 다른 말로 “목작 (木斫), 초파(耖耙)”라고도 합니다. “서흐레”란 말은 “서흐다”(썰다 剉)에서 기원했습니다.


○  서흐레 파 杷 <訓蒙 中:9>

○  剉 서흐다 < 吏文輯覽>


“번지질”

“번지질”이란 “번지로 논밭의 흙을 고르는 일”입니다. 번지는 논밭의 흙을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로서 보통 씨를 뿌리기 전에 모판을 판판하게 고르는 데 씁니다. 이 말은 우리말 “번지다”에서 왔습니다. 중세에 “번디”라 했습니다.


○ 번디 록 磟  번디 독 碡 <訓蒙 中:9> 


“풋바심”

“풋바심”이란 “채 익기 전의 벼나 보리를 미리 베어 떨거나 훑는 일”을 말합니다. “바심”이란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을 타작 (打作)을 말하지요.  이 말의 어원은 “부수다”에서 온 것으로 봅니다. 


“조바심”

“조바심”은 본래 “조를 터는 일”을 말합니다. 조는 꼬투리가 매우 질겨서 잘 털어지지 않습니다. 또 알이 매우 작아서 밖으로 튀어 나가면 흙속에 묻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알곡이 달아날까 조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잘 털리지 않아서 시간에 쫓겨서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조바심”이라 했습니다. 


“거름”

“거름”은 “(땅이) 걸다”의 어간 “걸 +음(접미사)”가 결합한 것입니다. 중세에 “걸움”으로 나타납니다. “걸움 > 걸음 > 거름”으로 되었습니다.


○ 녀름지 연장을 됴히 며 받 걸우 드릴 <正俗 二 23>(농사질 연장을 좋게 하며 밭에 거름을 주므로)


“두엄”

“두엄”은 풀, 짚 또는 가축의 배설물 따위를 썩힌 거름입니다. 18세기 문헌에서부터 “두험”으로 나타났습니다. 후에 “두험”은 모음 사이에서“ㅎ”이 탈락하여 19세기에 “두엄”으로 나타나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이 말은 “두다”(置)의 어간 “두”와 “엄(접미사)” 즉 “두+엄”의 결합입니다. 


“마대”

“마대”란 굵고 거친 삼실로 짠 커다란 자루로서 양식 같은 것을 담았습니다. 한자 어휘 “마대”(麻袋)에서 온 말입니다.


“되”

“되”는 곡식, 가루, 액체 따위를 담아 분량을 헤아리는 데 쓰는 그릇입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부피의 단위로 사용합니다. 곡식, 가루, 액체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쓰는데 한 되는 한 말의 10분의 1, 한 홉의 열 배로 약 1.8리터에 해당합니다. 한자어로 “승(升)”이라고도 합니다. “되다”에서 기원된 말입니다.


“수레”

“수레” 는 바퀴를 달아서 굴러가게 만든 기구로서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싣는데 사용했습니다. “수레”를 중세에 “술위”라고 했어요. 이는 동사 “싣다”(載)와 어음적인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함경도방언에서 “술기”라고 했습니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1447 석상 3:6>(태자가 양 수레 타시고 동산에도 가시며)

○ 轉은 그울 씨오 輪은 술위니 轉輪은 술위를 그우릴 씨니<1459 월석 1:19>

○車 술위 거 輛 술위  輜 술위 츼 輧 술위 <1527 훈몽 중:13>

○ 駕ᄂᆞᆫ 술위니 <月釋 序17>

○ 시ᄅᆞᆯ ᄌᆡ: 載 <類合 上 1>


“굴대”

“굴대”란 수레바퀴의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에 끼우는 긴 나무 막대나 쇠막대로서 축(軸)입니다. 이 말은 “구르다”의 “굴”과 “-대(접미사)”의 결합이라 봅니다. 


“끌채”

“끌채”란 수레의 양쪽에 대는 긴 채로서 거원(車轅)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은 “끌다”와 “-채(접미사)”의 결합입니다.


“줏대”

“줏대”란 수레바퀴 끝의 휘갑쇠입니다. 그 외에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든지 “차일을 받치는 중앙의 장대”를 일컫기도 합니다. 이 말은 자체로 만든 한자 어휘 “주대”(主臺)라고 봅니다. 자주 쓰이는 과정에서 어음 의미가 변화되어 지금은 “자기의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풍”도 말합니다.


“고삐”

“고삐”란 말이나 소를 몰거나 부리려고 재갈이나 코뚜레, 굴레에 잡아매는 줄입니다. 이 말은 “곳 (코)  + 비(轡 고삐)”의 합성어입니다. 본래 한자어 “비”(轡)에 고삐라는 뜻이 있지만 “소의 코뚜레”에 맸다고 하여 “곳” (코)를 더 붙여 “고삐”라 합니다. 


○ 곳믈 농 齈 곳믈 뎨 涕 <訓蒙 上 29>

○ 고티 법은 곳비로 뒷리 고 잇러 노 언덕의 가 <17세기 마경 하:83>(고치는 법은 고삐로 뒷다리를 매고 이끌어 높은 언덕에 가)

○ 韁繩 곳비    <1748 동해 하:20>

○  곳비 轡    <1880 한불 196>


“코뚜레”

“코뚜레”란 소의 코청을 꿰뚫어 끼는 나무 고리입니다. 18세기 문헌에서부터 “코ㅅ도래”가 나타나는데  “코 + ㅅ (관형격 조사) + 도래(갈고리)”가 결합된 것입니다. 


“굴레”

“굴레”란 말이나 소 따위를 부리기 위하여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입니다. 중세에 “굴ᅌᅦ”라 했습니다.  “못살게 굴다”의 “굴다”와 어원상 같은 것으로 봅니다.  


○ 굴ᅌᅦ 고ᇰ 鞚 굴ᅌᅦ 륵 勒 굴ᅌᅦ 긔 羈 <訓蒙 中 27>

○ 굴 축 呪 <訓蒙 中 3>


“멍에”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마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입니다. 중세에 “머ᅌᅦ”로 나타납니다. 이 말은 “메다”와 어원상 연관이 있습니다.


○ 머ᅌᅦᆺ아래 ᄆᆞ야지ᄅᆞᆯ 티디말라 (莫鞭轅下駒)<初杜解 23:36>

○ 멜 담 擔 <訓蒙 下 23>


“길마”

“길마”란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얹는 안장입니다. 중세에 “기ᄅᆞ마, 기르마”라 했어요. “길마”는 “길 + ᄋᆞᆲ(앞)”의 아ᇸ성으로  “길 떠날 채비”란 뜻으로 봅니다. 그리하여 “길ᄋᆞᆲ > 기ᄅᆞᆸ > 기ᄅᆞᆷ >  기ᄅᆞ마 > 길마”의 변화를 했다고 추정합니다. 


○ 기ᄅᆞ말 밧기시니 (解鞍而息) <龍歌 58章 >

○ 기르마지홀 피 鞁 <訓蒙 下中 20>


“언치”

“언치”란 말이나 소의 안장이나 길마 밑에 깔아 그 등을 덮어 주는 방석이나 담요입니다. 중세에 “어치”라고 했습니다. “얹다”와 연관된다고 봅니다.


“발구”

“발구”란 마소에 메워 물건을 실어 나르는 큰 썰매로서 주로 산간 지방 따위의 길이 험한 지역에서 사용했습니다. 중국말  파리(爬犁)의 차용어입니다. 기록을 “파리(把犁)”로 잘못 기록하고 “발외” 라 불렀다고 합니다. “발외”가 후에 “발구”로 되었습니다. 20세기 7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연변에서 “소발구”를 엄청 사용했었습니다.


○ 발외 把犁 발외 似車而 無輪 < 譯解 下 23>


“달구지”

“달구지”를 중세에 “ᄃᆞᆯ고지”라 했어요. “ᄃᆞᆯ다”(懸)에서 기원 한 것으로 봅니다. 즉 “다고 다니는 수레”란 뜻에서 “ᄃᆞᆯ고지”라 했으며 후에 어음변화하여 “달구지”로 되었습니다.


○ 아기ᄅᆞᆯ 다가 ᄃᆞᆯ고지예 엿ᄂᆞ니라 (把孩兒放搖車) <初朴通事 上 56>

○ ᄃᆞᆯ고지 요 軺 <訓蒙 中 26> 


“썰매”

“썰매”란 얼음판이나 눈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노는 기구입니다. 네이버에서는 썰매의 어원을 한자의 “설마(雪馬)”로 보는 설을 부정합니다.  하지만“썰매”는 자체로 만든 한자 어휘 “설마” (雪馬)에서  온 것으로서 “설마 >설매 > 썰매” 로 되었다고 봅니다.

(계속)


우리말 어원 산책  


렴광호 (廉光虎)  


렴광호 1954년길림성화룡시출생.연변대학조문학부77급학부생,1984년석사,1995년박사졸업.


원연변대학 조문학부 조선어강좌 강좌장,석사지도교수.연변대학十大跨世纪人才.

전 청도대학 한국어학부 교수학과장,청도대학중한센터 주임.청도대학首届十大‘我们心目中的好导师’,教学名师,청도시정부외사판공실외국어고문

전중국조선학회부회장,중국한국어교육연구학회부회장

천진외국어대학,제남대학산동성청년정치학원,청도빈해대학,청도직업기술대학,절강관광직업대학 겸직초빙교수.

일본교오토대학 종합인간학부 중국어학과 방문학자,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방문학자,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저서:《종결어미의통시적연구한국博而精출판사1998,

사회언어학연변대학출판사1990,

언어학개론연변대학출판사1997,

《韩国语敬语形式的研究》辽宁民族出版社 2003,

《韩国语听力教程》(1-2)(主编) 北京大学出版社  2005、2008 (普通高等育十一、五级规划教材),

较词典》 한국亦출판사2006,

《新编韩国语语法》 黑江朝族出版社2012

《언어학 개론》(韩文) 흑룡강조선족출판사2014

논문: “十五世纪以前朝鲜语敬语表现形式的考察”<民族语文>1998.1등 백여 편。




[1] 1.신체 (1)

[2] 1.신체 (2)

[3] 2.친척

[4] 3.사회

[5] 4.날씨 시일 민속  종교

[6] 5.자연

[7] 6.건축물

[8] 7. 음식

[9] 8. 숫자 방향 빛깔 냄새
[10] 9.기물 도구

[11] 10. 육지동물, 새

[12] 11.수산물

[13] 12.곤충

[14] 13.수목

[15] 14.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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