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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남자들이 말한다: 나에게 술이란?(글밤)

Geulbam omi 潮歌网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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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밤] 팔구쟁이 썰(1회)

나에게 술이란? (남자편)

538번째 밤

기획ㅣ글밤       편집ㅣ고소미

작가ㅣ치산, 마피, 1호선, 호가든, 강남행자

▲ 하이! 친구~ 나한텐 술이 있다네,

자네한텐 들려 줄 이야기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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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술맛을 모른다. 술은 나하고 맞지 않는 것 같다. 술을 마시고도 하나도 취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나는 맥주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다. 혹자는 이게 몸안에 알콜을 분해하는 능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나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또 술자리에 가기 좋아한다. 술을 마실 수는 있는데 술상에서 화제가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말을 적게 하게 된다. 말을 적게 하면 자연 빨리 취한다. 그래서 나는 술 마신지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졸음이 온다. 


술에 대해서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머리가 아픈 것이다. 술을 마시고 알딸딸하게 기분이 좋아지면 당연히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현실은 맥주 두병만 마셔도 머리가 아파난다. 특히 싸구려 술이 그렇다.


그런데 나는 술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와인, 빼갈, 맥주 술병에 붙은 라벨을 꼼꼼하게 읽어보며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요즘은 수입맥주가 흔해져서 마트 널린게 독일 맥주, 벨기에 맥주, 덴마크 맥주다. 이미 지난 과거가 되어버린 연변팀 경기나 스페인 내셔널 더비, 월드컵, 유로컵 같은 메이저 축구 경기 대회가 있을 때면 수입맥주에 명태 한두 마리면 신선도 부럽지 않다.  


예전에 워크샵에 갔다가 지인이 캐나다 공항에서 인민페로 만원을 호가하는 와인을 사왔는데 한잔 딱 마신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치즈나 과자에 알콜 3%짜리 모스까또를 한두 잔 마시면서 내 중심으로 지인들과 덕담을 나누는 것이 내가 바라는 술자리다. 이런걸 보면 나는 참 부르조아 입맛에 길들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참 모순되는 것 같다. 술상에서 맥주 한 잔을 깨작깨작 없애면서 비난을 받는데 술자리에는 가기 좋아하고, 자신은 마시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마시지 않는다고 비난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기분이 나쁘다. 


술은 나에게 가까이 하고 싶어도 가까이 못하는 연구분석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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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술은 마셔야만 하는 생명수다. 운동을 하고 폰을 노는 것이 그래도 술 한잔 하는 것보다는 재미나 기쁨이 덜하다.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도 작은 술잔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주당이다. 나 죽거든 술독 밑에 묻어주오 하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나는 술에 대한 애착이 깊다. 술을 마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우유를 마신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몸이 아파 약은 안 사먹어도 술은 사먹는다. 그러나 맥주가 똑 떨어졌는데, 마트 가야지! 나는 이런 짓은 한 번도 못해봤다. 혼술은 안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술맛의 10%는 술을 빚는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이라고 했다.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술은 좋은 사람들과 나눠먹는 술이라고 해야겠다. 따라서 안주가 중요하다. 삼겹살엔 소주, 마른 안주엔 맥주, 샤브샤브엔 빼주를 선호한다. 또 그렇게 몰아가기도 한다. 서서히 강요보다는 배려가 되는 술문화 때문인지 요즘은 와인으로 많이 대신하기도 하나, 나는 기껏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서 그래도 항아리만한 배에다 부어넣는 맥주가 최고다.


500cc 큰 잔에 하얀 커품이 맥주의 신선함을 덮어주는 듯한 맥주는 빵과 우유보다 더 맛갈스러워 보인다. 굴을 먹으면 바다를 삼킨다고 했다면, 맥주를 마시는 것은 전 세상을 다 가진 행복함이다. 목이 컬컬할때 마시는 한 잔의 맥주는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약이다.


업무의 연장선이요, 영업의 꽃이라면서 마시는 술은 즐긴다기보다 눈치게임이다 보니 별도로 얘기해야 겠다.


한 잔의 술보다 한 번 또 한 번의 목 넘김이 피로를 풀어주고 나를 부드럽게 해주는것 같다. 오늘밤에도 술잔이 입술에 스치운다는 후배의 시구를 떠올리면서 한 잔 해야겠다.  

술 한잔 해요~

날씨도 쌀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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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술이란?” 이토록 심각하고 진지한 질문은 꽤나 오랜만이다. 내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관계 중의 하나, 과연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적절하고 기꺼울 것인가. 이 엄청난 연구가치를 지닌 질문에 대한 명료한 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에게 역설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나에게 술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어릴적 “강동상점”이라는 간판을 내건 룡정의 막내삼촌네 “쇼플”에 방학마다 놀러다니던 나는 어느날 배불뚝이 흰 비닐통에 담긴 이름모를 액체의 황홀한 향에 홀리고 말았다. 삼촌 내외의 눈을 피해 깜쪽같이 해제낀 빼갈이라는 그 한 컵의 액체는 얼마 후 깜쪽같이 내 의식을 납치했다. 삼촌의 말에 의하면 당시 우리 세대의 18번이었던 “따라배우자 뢰봉을"에 이어 “아아아 뢰녕 소선대의 본보기”를 번갈아가며 온 오후 불러댔다는 후문. 기억을 상실한 그 순간들속에 “나는 정녕 누구이며 어디로 간 것인가?”. 무아지경이 따로 없다. 나이를 먹어가며 나는 점차 그 “무아지경”의 아름다움을 주동적으로 체험하는 도를 깨쳤다. 넘지 말아야 할 선에 최대한 밀착하되 또한 그 선 너머로 잠간 기우뚱은 할 수 있되 순간 방심하면 고꾸라진다는 것. 취기가 그 선까지 오르면 음주라는 행위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아, 점차 내가 사라지고 선과 하나가 된 무아지경의 상태에서만 극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단,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무의식에 장치된 “절제”라는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으면 순간 망가질 수 있다는 것. 세상에 이보다 더 황홀한 예술이 또 있을까. 술이 없었다면 나는 일상 밖에 존재하는 또다른 “무아지경”의 예술을 영원히 경험할 수 없었을 터.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술의 은혜와 배려로 많은 것을 얻었다. 뜨거운 피가 들끓던 그때는 청춘의 정오, 오랜 시간 가슴에 품고 있던 그녀를 만나게 한 것도 술로 이어진 자리었다. 마시는 공기마저 나와는 차원이 다를 것만 같았던 여신의 입술을 감히 사적인 첫 만남의 자리에서 훔친 짓은 분명히 내가 저지른 것이 아닌, 술이 치른 거사였을테다. 술에서 깬 뒤 그녀가 용서치 못할 실수라고 가슴치며 수없이 해댔던 이불킥은 지금 매일 밤 그녀와의 따뜻한 포옹으로 이어지고 있다. 술이 없다면 내게 생명을 내놓아도 전혀 아깝지 않은 이 사랑은 없을터. 나에게 술이란 미인을 얻게 한 용기이자, 세상을 얻게 한 지혜이자, 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고로 “나에게 술이란” 이 심각한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건대 “술, 네가 없다면 오늘의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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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을 꿀맛에 비유하는 건 너무 게으르고 안일한 비유법이다. 더운 여름날, 빡세게 머리를 굴려 일하고 땀을 훔치며 마시는 노천 꼬치집에서의 한잔 맥주가 어디 꿀맛 정도던가? 세상에 다시 없는 황홀한 맛이다. 달고 시원하고 쌉싸름하고 풍성한 것이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가는 그 느낌은 가히 황홀하다. 


머릿속 얽히고 설켰던 실타래가 홀연 풀리는 기분? 찌그덕찌그덕 돌아가던 녹슨 치륜에 윤활유가 쳐지는 것 같은 기분? 그도 아니라면 온몸의 세포에 반짝 불이 켜지는 기분? 


과함은 아니함만 못하더라고 그 향이 황홀한 술이 양을 초과하면 이 모든 황홀했던 기분을 상쇄하고도 남을 고통으로 몸을 덮쳐오기도 하지만 그 첫잔의 황홀함을 아는 사람은 쉬이 술을 밀쳐내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발붙였을 때, 가장 외로운 순간은 홀연 맥주가 생각났을 때와 맥주를 마실 때였다. 가슴 한켠 밀려오는 씁쓰레한 서러움이 있었다. 


뜨뜻한 맥주를 아무렇지 않게 무심한 표정으로 상에 올려놓고 가는 식당 복무원에, 맥주잔으로 이빠진 사기잔을 놓고 가는 복무원에게 애먼 화가 올라왔다. 사기잔은 좀 아니지 않냐고 했더니 실팍하니 무던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没事儿,不都一样吗?”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게 어떻게 같은 건가요? 엄마가 떠주는 봉긋한 공기밥과, 식당 아주머니가 나무칼로 긁어서 담아주는 밥이 같은 건가요? 라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언젠가 고향 선배에게 그런 넋두리를 했다. 내가 사는 이 곳은 맥주나 안주는 훌륭하나 맥주 마실 분위기가 영 아니고 한국은 안주나 분위기는 훌륭하나 맥주 자체가 맛이 없으며 일본은 맥주는 탁월하나 안주가 아니더라고. 


선배가 그랬다. “어떤 호프바는 맥주는 맛있으나 마른 명태가 별로이고 또 어떤 가게는 둘다 훌륭하나 마른 명태 양념이 별로네라. 그냥 살거라. 그리고 느껴라.”이제는 이 빠진 사기잔에 부어 마시든, 뜨뜻한 맥주가 나오든 다 잘 마신다. 그냥 마셨고 느꼈다. 


내게 술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첨으로 타지에 발붙였을 때의 그리움은 당장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애절함이었다면 십여 년을 타지에서 부대끼며 살다 찾아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그저 친구 같은 것,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 같은 것, 엷고 아련한 향수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냥 산다. 그냥 마신다. 그리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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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가을바람에 수양버들이 흐느적거리는 한적한 호수가에 앉아서 멀리서 찾아 지인하고 술 한잔 기울이며 수다를 떨고 있다. 따스한 해볕이 내리쬐는 한낮부터 저 밤하늘에 별들이 깜박일 때까지… 해질녁쯤 지인은 호수물에 첨벙 뛰여들며 취기를 뺀다고 난리도 피웠다. 


나는 주변으로부터 한량이라 불리운지가 오래다. 늘 가슴 깊은 곳에 경치가 근사한 청산벽계를 마주하고 호방하게 술 한잔 기울이던 조상선비들을 상상하며 술 한 잔 기울인다.


한때 어느 작그마한 글동네에서 삼총사로 소문난적이 있었다. 담배쥐골 형과 술도사 동생 그리고 현장법사로 불리운 나 셋이서 항주서호가에 남긴 술자리는 감히 술군들의 절경이라 장담한다. 


고향의 깊은 원시림속에서 술잔이 아닌 큰 사발로 독한 빼갈을 샘물 퍼마시듯 꿀덕꿀덕 들이키며 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운 술을 밑천으로 남방땅에 내려와서 술자리에서 남방사람들을 쓸어눕히는걸 자랑으로 시뚝대다가 결국 남방의 소흥술에 고주망태 만취한후 세상이 무서운줄 알게 되였다.


나의 인생수련이 술수련이라 해도 과분하지 않게, 술을 무서워 하다가 애지중지하다가 우습게 여기다가 훌훌 만사를 술과 엮으며 마음껏 즐기고 있다. 술로 사람을 알고, 술로 일을 배우고, 술로 세상을 깨닫고 있다. 


인연이라 할가 어렸을적 인상깊게 보았던 맨날 술에 만취해서도 불쌍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던 드라마속 주인공 제공(济公)을 찾아 항주 령은사 바로 옆동네서 장장 십여 년을 살면서 술과의 정분을 더더욱 돈독하게 쌓을 수가 있었으니 하늘에 감사할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 술이란 소중한 꿈이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글밤과 함께 하면 

우리 민족문화를 지켜가는 일이 

한결 즐거워 집니다

감성문화대표계정: geulb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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